終戰50주년 일본국회 결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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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일밤 합의된 일본여당의 국회결의안은 우리에게 미흡하기 짝이없는 내용으로 돼 있다.역대 일본총리들의 사과내용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일본국회(중.참의원 포함)가 이같은 결의를 추진,성사단계에 들어선 것은 현행 일본헌법 아래서는 처음 있는 일이며,「어려운 일」이 이뤄진 것이다.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총리나 일왕(日王)이 아니라 일반국민의 투표로 뽑힌 선량들 이 스스로 목소리를 모아 침략과 식민지지배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것은 의의가 있다.
이번 결의문은「부전결의」합의 실패로 연립정권이 무너지는 상황까지는 가고 싶지 않은 자민.사회.신당 사키가케 3당의 합작품이다. 역사인식은 달랐지만 정권욕에서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것이다.모리 요시로(森喜朗)자민당 간사장이 문안합의후『3당이 모두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70%만족론」을 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때문에 합의된 결의문에는 모호한 표현 들이 많다.침략이나 식민지지배를 일본만이 한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담은 구절과「과거의 전쟁에 관한 역사관의 차이」를 거론한 것은합의과정의 진통을 반영한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총리정권은 이번 결의를 성사시킨 뒤 개각을 단행하고 참의원선거(다음달 23일)준비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그동안 안팎으로 비난만 받아오던 정권의 기반을 다지려할 것이다.
자민당과 정부측은 결의문 합의로 우선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前외상의 망언파문이 가라앉길 기대하고 있다.이와 더불어 북한에 대한 쌀제공 문제가 풀려나가 北-日 국교정상화교섭이 재개되길 희망하고 있다.북한이 와타나베 망언에 대해 잠잠했던 것을 일본은 일단 청신호(靑信號)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7일 여당안 합의에 대해『침략.식민지지배.반성의 세 단어가 모두 포함된 것은 주변국과의 관계를 위해 아주 잘된 일』이라고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핵실험 문제등으로 최근 부쩍 소원(疏遠)해진 중국과의 관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하는 것이다.일본은 이번 결의를 계기로 외교의 큰 현안중 하나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입문제에 한국등 아시아 국가들이 협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라고 있다.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입에는 중국의 태도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결의 하나로 이같은 현안이 풀릴 것으로 보는 것은비현실적인「희망사항」이다.자민당은 비록 이번에는 정권유지의 필요상 합의를 해 주었지만 상황만 호전되면 단독정권을 수립하려 할 것이며,그렇게 되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이번 국회결의는 퇴색할 가능성이 크다.때문에 사회당의 참패가 점쳐지는 참의원선거와 그후 중의원선거까지 지켜봐야 한다.
[東京=盧在賢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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