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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 당당한 이류] 탤런트 여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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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시절 밤낮 연습에 매달리며 연극에 몰두한 것이 TV 탤런트로 40년간 장수할 수 있었던 튼튼한 '기초'가 됐다.꿈의 반대는 현실이라고 하지만, 여운계에게는 꿈이 현실의 재료이다.신인섭 기자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인 '오나라 오나라'가 흘러나온다. 흥에 겨워 짧은 순간 '구운몽'에 취하다보면 어느새 궁중의 수라간 속에 들어간 자신을 발견한다. 이때 어디선가 마마님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린다. 드라마 속의 정상궁은 오래 전에 죽었지만 마마님은 휴대전화기 앞에 씩씩하게 살아있다.

그녀가 처음 방송을 탄 건 1949년 수원 매산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서울 정동에 라디오 방송국이 있던 시절이다. 당시 교감이었던 홍은표 선생님은 작곡도 하고 극본도 쓰는 분이었다. 동화구연대회에 나가 '제법 까부는' (그녀의 별명이 '까불이'였다) 걸 눈여겨 본 선생님이 라디오 '어린이극장'에 그녀를 발탁해 출연하게 됐다.

마이크라는 걸 그때 처음 보았다. 수원에서 통치마 저고리 입은 사람만 보다가 곱게 양장을 한 여자 아나운서를 보고 기가 막히게 예쁘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입고 온 보라색 치마와 노랑 저고리를 견주어보며 그 옷을 만들어 입힌 엄마가 참 촌스럽다고 느꼈다. 데뷔(?)한 작품은 노래도 하고 목소리 연기도 하는 동화극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는다.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나이든 샬리에르가 젊은 신부 앞에서 노래하듯이 열 살 소녀가 되어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울지 말고 어서 자라. 울지 않고 너 잘 자면 아버지도 오신단다." 노래하며 손도 따라 물결처럼 움직인다. "그때 직접 풍금도 쳤죠."

무학여고 다닐 때 응원단장.규율반장.방송반원. 합창단원.기계체조 부원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항상 뭔가 보여주고 싶어 안에서 '끓었다' .

1958년, 그녀가 입학하기 전 고려대 전체 여학생 숫자는 열 명도 채 안 되었다. 그러다가 그 해에 무려 여학생 45명이 한꺼번에 입학했다. 그 활달하던 기개는 어디로 숨었는지 땅만 보며 강의실을 옮겨 다니던 그녀 앞에 고대극회 단원 모집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본관 5층 다락방. 수염도 안 깎은 사내들이 여학생의 등장으로 기쁨에 겨워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순간 '잘못 왔구나'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에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그 때부터 용감하게 연극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손톤 와일더 원작 '우리 읍내'. 맡은 역은 깁스 부인. 19세 처녀가 중년의 어머니역을 맡은 것이다. "그게 어머니의 시작이었어요." 대학 4년 내내 어머니, 아니면 할머니 역할을 했다. 석 달 동안 밤낮 없이 연습하고 무대에 올랐던 시절이었다.

대학 졸업 후 고교 국어교사 발령을 기다리던 1962년 4월 드라마센터가 문을 연다. 365일 연극만 한다고 하니 각 대학의 연극부 출신들이 다 모였다. 서울대의 이순재.이낙훈.김동훈, 연세대의 오현경, 고려대의 나영세.박규채. 김성옥, 그리고 해외파 이근삼.양광남 등이었다. 2년 동안 무대에 선 후 동양방송(TBC)이 개국하자 그리로 옮겼다.

동아연극상을 두 차례나 받을 만큼 연극에선 각광받았지만 텔레비전에 오자 온갖 '허접한' 역은 다 맡게 된다. 왜 그랬을까? "TV 연기자로는 악조건이지. 못생겼잖아." 그 웃음 속엔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렇다면 왜 연극은 그만두셨나요?" 역시 주저함이 없다. "돈을 안 주니까." 드라마센터에선 돈을 쥐어 본 기억이 없다. 졸업한 이듬해 결혼했는데 남편은 대학원생이었다. 아이도 생기고 돈이 필요했다. TV에서 주목받은 건 인기드라마 '아씨'에서 간난이역을 맡고부터였다. 아씨 역의 김희준 못지않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젊을 땐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다. '모범운전사 갑순이' '범띠 가시나' '수탉 같은 여자' 등에서 60년대 트로이카(윤정희. 문희.남정임)의 감초 같은 들러리를 주로 맡았다.

연기자로 최전성기가 언제였냐고 물었다. "지금이죠." 말 한마디마다 확신이 있다. '나는 내 몫을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수없이 많은 할머니를 연기했다. '청춘의 덫'에서는 심은하의 외할머니, '왕과 비'에서는 안재모(연산군)의 외할머니였다. 외손자만 셋인데 자애로운 할머니인지 궁금하다. "자꾸 잔소리하니까 싫어하던데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으니 치약 광고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딸과 사위는 둘 다 치과의사다.

'어떤 사람이 좋으냐'고 물었다. "봄이 와도 그 사람, 겨울이 와도 그 사람이어야지 계절 따라 확 바뀌는 사람은 싫다." 그 말 속에 수라간 최고상궁의 지조와 기품이 배어있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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