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서부경찰서’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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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명박 대통령이 치안행정을 질타했다. 15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다. 이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치안행정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행정안전부·경찰청의 ‘뒷북 행정’과 ‘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미온적 대처’다.

이 대통령은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도 범인 하나 잡지 못하고, 경찰서 하나 세우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나.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취임 이후 알아보니 ‘지금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가. 그런 식 행정은 국민에게 도저히 사랑받을 수 없고 신뢰를 줄 수 없다”며 치안행정을 비판했다.

◇치안실정 외면한 규정=대통령이 일개 경찰서 신설까지 거론한 것은 규정에 얽매여 민생치안을 도외시한 기관들에 대한 분노로 받아들여진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화성시의 면적은 서울의 1.4배다. 그러나 화성경찰서는 화성시가 아닌 오산시에 있다. 화성(37만 명)과 오산(17만 명)을 모두 관할한다. 화성경찰서 소속 태안지구대의 경우 관할 면적만 인근 군포시보다 넓은 43㎢, 주민은 14만 명에 이른다. 반면 근무 경찰관은 38명에 그친다.

화성은 1980~90년대 부녀자 연쇄살인이 이어졌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흥행으로 ‘범죄의 도시’라는 불명예까지 안고 있다. 화성 주민들은 80년대 후반부터 경찰서 신설을 요구해 왔다.

특히 지난 1년여 동안 발생한 부녀자 연속 실종 사건으로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해 갔다. 2006년 12월~2007년 12월 수원·군포시에서 실종된 배모(45)·박모(37)·박모(52)씨 등 세 명은 모두 화성시 비봉면에서 휴대전화 전원이 끊겼다. 지난해 성탄절 실종된 이혜진양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도 이들의 실종 장소로부터 차량으로 10분 거리다.

상황이 이렇자 지난해 1월 최영근 화성시장이 나섰다. 청와대·국무총리·행정안전부(당시 행정자치부)에 ‘경찰서를 신설해 달라’는 건의문을 보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난색을 표했다. 규정을 들고 나왔다. ‘경찰서를 신설하려면 인구가 50만 명을 넘어야 한다’는 관련 규정을 내세웠다. 화성은 동탄 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였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다급해진 화성시는 다시 ‘경찰서 부지(2만6446㎡)를 제공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을 내놨다. 그해 5월엔 김문수 경기지사까지 직접 나서 박명재 행자부 장관에게 건의했다.

그제야 이택순 경찰청장과 박 장관이 나서 올 3월 중 ‘화성서부경찰서’를 개설키로 약속했다. 그럼에도 난항을 거듭했다. 경찰관 정원(229명) 증원이 늦어지면서 예산(46억여원)이 마련되지 않아서다.

◇대통령이 나서야 해결=그러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상황을 바꿔놓았다. “행정안전부가 다른 예산을 줄이더라도 해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질타 뒤 하루 만에 “3월 중 신설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경찰청과 경기도는 회사 자재 창고 건물을 임시청사로 만들어 조기 개청키로 했다. 화성서부서가 설치되면 화성시 서부 지역 12개 읍·면·동을 관할하고, 오산시에 위치한 화성경찰서는 화성동부서로 명칭을 바꿔 오산시와 동탄·태안 등 화성시 동부 지역을 담당하게 된다.

이창무(경찰행정) 한남대 교수는 “규정이나 대통령 말 한마디에 얽매이지 말고 치안 수요와 공급을 파악해 대처하는 시스템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영진·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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