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의 우즈’ 해밀턴 역시 스피드 황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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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섭씨 37도의 살인적인 더위, 아스팔트가 깔린 서킷(경주로) 노면의 온도는 50도를 넘나들었다.

게다가 올 시즌부터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 때 미끄러짐 현상을 제어해 주던 전자 장비 ‘트랙션 컨트롤’ 사용이 금지됐다. 드라이버들의 진정한 실력을 겨뤄보자는 의도에서다. 대당 100억원이 넘지만 에어컨 없는 머신(경주용 자동차)의 좁디 좁은 콕핏(경주용 자동차 운전석)에 갇힌 레이서들은 이중고를 안고 출발선에 섰다.

2008 포뮬러원(F1)의 시즌 개막전 호주 그랑프리의 혼돈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네 번째 코너를 도는 순간 추돌이 이어지며 채 한 바퀴를 돌기도 전에 5대가 서킷에서 사라졌다. 출발선에 선 22대 중 완주를 마친 머신은 7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F1의 타이거 우즈로 불리는 흑인 레이서 루이스 해밀턴(23·맥라렌)만은 독야청청했다.

루이스 해밀턴이 16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2008 F1 호주 그랑프리에서 1시간34분50초616으로 1위를 차지했다. 예선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둬 폴 포지션(선두)에서 출발한 해밀턴은 2위 닉 하이펠트(31·BMW)를 5초 이상 앞서며 일방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지금껏 출전한 18차례 F1 그랑프리 중 다섯 번째 우승을 차지한 해밀턴은 “페이스를 유지했고 절대로 무리하지 않았다”며 “말레이시아 그랑프리(3월 23일)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2005, 2006년 챔피언으로 현역 드라이버 중 최다 시즌 타이틀 보유자인 ‘스페인의 영웅’ 페르난도 알론소(27·르노)는 4위에 올랐다. 알론소가 호주 그랑프리에서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것은 2003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까지 루이스 해밀턴과 한솥밥을 먹다 경쟁에 밀려 르노로 옮긴 그는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으로 이 대회에 나섰지만 설욕의 기회를 다음 라운드로 미뤄야 했다. 하지만 11위로 출발해 4위까지 치고 올라서며 기량만큼은 최정상급임을 입증했다.

지난 시즌 챔피언 키미 라이코넨(29·페라리)은 전날 예선에서 급유 실수로 인해 15번째로 레이스를 출발했다. 역전 우승을 위해 라이코넨은 피트스톱(레이스 도중 급유와 타이어 교체)을 한 차례만 하는 전략으로 나섰다. 무리수는 화를 불렀다. 라이코넨은 58바퀴 중 마지막 5바퀴만 남겨놓고 차량 이상으로 완주를 포기했다. 8위에 그치며 포인트 1점을 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해밀턴의 팀 동료인 코발라이넨(27·맥라렌)은 레이스 도중 알론소와 라이코넨을 적절히 견제하면서도 알론소의 뒤를 이어 5위에 올랐다.

일본 출신 나카지마 가즈키는 6위로 골인해 3포인트를 따내며 열도를 열광시켰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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