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행복한책읽기>"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7년만에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된 것은 프란체스코 알베로니의『에로티시즘』 덕이다.그 책은 남녀 에로티시즘의 차이와 특성을비계속성과 계속성 혹은 분리와 통합으로 규정했다.남성 에로티시즘의 분리적 성격과 여성 에로티시즘의 통합적 성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예를 들면 이렇다.남자는 여자가 아름답기만 하다면 그녀의 직업이 화장실 청소부라 할지라도 상관치 않는다.그러나 여자는 남자가 아무리 통하게(?) 생겼다 하더라도 그의 직업이 그렇다면 동침하지 않는다.에로티시 즘을 앞에 놓고 남자는 여자의 사회적 지위.계층.신망.명성에 신경쓰지 않지만 여자는 그 반대.남자는 여자의 얼굴,궁극적으로는 성기만을 향해 돌진하지만여자에게 에로티시즘은 최종적인 고려사항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운데 가장 놀랄만한 사건은의사인 토마스와 시골 카페의 여급에 불과한 테레사의 결혼이다.
그러나 남녀의 에로티시즘에 관한 위와 같은 고찰을 상기하면 그놀라움은 금세 사라진다.쿤데라는 이 소설의 두 남녀 주인공인 토마스와 사비나에게 각각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기호를 주었는데,그것은 분리와 통합 또는 비계속성과 계속성이라는 성질에서 비롯된다.왜 아닐것인가? 분리는 자신의 단절적인 성격 때문에 가벼워지고,통합은 자신의 축 적적인 성격 때문에 무거워지는 것을!토마스는 평생에 몇 여자를 소유했었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아마 2백명쯤 될까』라고 대답하는데 그의 존재가 가벼운것은 바로 육체와 영혼이 분리돼 있는 남성 에로티시즘 특성에 연유한다.또 테레사에 게 작가는 여성 에로티시즘의 통합적 성격을 부여하는데 그녀는 『육체와 영혼의 이원성 지양,어쩌면 시간의 지양까지도 그녀의 사랑은 지향했다.』 남녀 에로티시즘의 관심으로 국한해 읽을때,쿤데라 특유의 현학성을 순화시켜주는 장점이 있는 대신 남녀 간의 성별을 양식화하고 있다는 비난이 돌아갈지도 모른다.그러나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대위법적 구성은 그런 비난을 무화시킨다.배반과 배반으로 단절된 사비니의 삶은 바로 남성적 에로티시즘을 사는 것에 다름아니었다.어느 대목에서 그녀는 『공개적이 된 사랑은 무겁게 될 것이고 짐이 될 것이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반면 애인을 데리고 친구,동료,제자,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찾고 그들과 함께 마시고 잡담하며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이 없는 세계에 사 는 것을 『진실에서 산다』고 말하는 프란츠는 남자이면서 여성적 에로티시즘을재현한다.융에 의하면 중년이 되면 남자는 아니마(여성성)의,여자는 아니무스(남성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하는데,이 소설을잘 읽어보면 테레사와 토마스 두 사람의 역할이 노년에 역전됨을알게 된다.여자는 독립적이 되고 남자는 의존적이 되는 것이다.
애초에 토마스는 영원재귀를 역겨워 했지만 끝내는 『행복이란 반복에 대한 소망』이라는 테레사의 감정에 함몰한다.우주가 끝없이재생하고 순환하는 것이라면 그 영원재귀는 오로지 사랑의 힘에 이끌린다.한 대중가요는 얄밉도록 그 뜻을 잘알고 있었다.「나는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나는 이 소설을 놓자마자방금 번역된 쿤데라의 또다른 소설 『사랑』을 향해 손을 뻗는다. 〈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