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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海의 천국, 쿠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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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28면

1 카리브해 카요 레비사(Cayo Levisa)섬으로 가는 길

쿠바에 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그 먼 데까지 어떻게’라는 놀라움과 ‘멋지겠다’는 육감적인 동경! 캐나다·멕시코 등을 거쳐 두어 번씩 비행기를 갈아타고서야 닿을 수 있는 쿠바는 세상에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정서적 거리감만큼이나 실로 먼 나라였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일단 그 땅에 발을 딛고 나면 그 긴 여정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 만큼 쿠바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낮이나 밤이나 춤과 노래를 놓지 않는 쿠바 사람들은 인생을 재미나게 사는 방법을 유전적으로 터득하고 난 이들 같았다. 오랜 식민의 역사와 혁명의 상흔, 경제적인 곤궁마저 예의 그 ‘애환 깃든 리듬’에 녹여 맛깔 나게 날려버리는 쿠바인에게서 상상했던 ‘체제의 우울’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2 트리니다드 ‘카사 데 라 무지카’의 흥겨운 풍경 3 비냘레스에 있는 시가 공장. 생산 과정을 견학할 수 있으며 코이바, 몬테크리스토 등 최고급 시가를 시중에서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4 트리니다드의 어느 작은 갤러리. 강렬한 컬러와 과감한 터치가 ‘정열의 쿠바’를 느끼게 한다. 5 말을 타고 트리니다드의 평원을 가로지르던 중 만난 노인. 즉석에서 흥겨운 기타 연주를 들려주었다.

미국의 경제 봉쇄 덕에 아직까지 때 묻지 않은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 그리고 이방인마저 자기네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게 만드는 흥과 신명이 넘치는 곳. 체제와 혁명, 체 게바라 같은 정치적 구호마저 넘치게 럼을 부어 잔을 부딪치고 말면 그뿐일 것만 같은 이 나라에서는 과도한 업무에 지친 사람도, 그렇다고 내일 먹을 식량을 구걸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6 트리니다드의 골목길. 강돌을 깔아 만든 길과 수차례 덧칠한 듯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7 트리니다드의 기념품 골목. 품질도 제법이고 가격도 저렴해서 쇼핑할 맛이 난다.

넘칠 것 없는 그들의 소박한 삶을 마냥 아름답게만 보았다면 자기 감상에 빠진 여행객의 성급한 판단이었을까. 그러나 과로와 스트레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던 심신을 위로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에 그들의 여유 있는 삶의 템포는 분명 특별한 것이었다.

8, 11, 13, 14 멋스럽게 바래거나 층층이 덧칠된 건물들. 건물도, 가구도, 전자제품도, 쿠바에는 오래된 것 천지다. 9 수십 년 된 자동차들이 활보하는 쿠바의 도로는 클래식 카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10, 12 1900년대 초 스페인 이주민이 정착한 이래 백인이 쿠바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되었다. 3분의 1은 흑인과 스패니시 사이의 혼혈인 물라토이거나 흑인 노예의 후손들 15 관광객을 위한 레스토랑. 쿠바의 음식 문화는 특별할 게 없지만 꿀과 민트를 듬뿍 넣은 정통 ‘모히토’를 싼값에 실컷 맛볼 수 있다.

럼과 시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나라
쿠바는 최근 전 세계 칵테일 리스트를 평정한 럼 베이스의 칵테일 ‘모히토(mojito)’의 본고장이자 세계 최고로 치는 코이바(Cohiba) 시가가 생산되는 곳이다. 그러나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 먼 나라가 낯설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음악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일으킨 세계적인 쿠반 뮤직 붐 덕에 이미 우리 귀에도 익숙해진 그 음악들이 그야말로 쿠바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들려오기 때문. ‘찬찬’ ‘관타나메라’ ‘칸델라’같이 유명한 곡들은 쿠바를 다니는 내내 수십 번도 더 듣게 된다. 꼭 카페나 레스토랑이 아니라도 집집마다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하루 종일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카페나 술집·광장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밤새도록 음악이 멈추지 않는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의 신시가지 베다도(Vedado)의 이정표 구실을 하는 ‘호텔 나시오날(Hotel National)’에서는 매주 두 번씩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이 열린다. 이미 작고한 오리지널 멤버들을 볼 수는 없다 해도 이 명예로운 이름을 이어받은 이들은 단연 쿠바 최고의 뮤지션들로 그 세계적인 명성을 실감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일주일에 단 두 번뿐인 데다 그나마 취소되는 경우가 잦아 짧은 일정 중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을 관람하게 되는 것은 운 혹은 운명에 맡겨야 할 일이지만, 설사 공연을 놓친다 하더라도 그리 억울해할 일은 없다. 쿠바는 기대치 않게 싼값에 혹은 공짜로 멋진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나라니까. 기타 한두 대와 타악기 마라카스만으로도 그들의 전통음악 손부터 맘보·차차차·룸바까지 멋들어지게 뽑아내는 거리의 악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 여기가 바로 쿠바구나’ 실감하게 된다.

트리니다드, 살사와 호스 라이딩(horse riding)
쿠바 중부에 위치한 트리니다드(Trinidad)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인 도시다. 스페인 식민 시대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고풍스러운 정치를 자아낼 뿐 아니라 시골마을다운 정겨운 풍경들이 살아 숨 쉬는, 그야말로 보석같이 아름다운 곳. 수도 아바나에서는 여행자용 고속버스인 ‘비아술(Viasul)’을 타고 6시간가량이면 도착할 수 있다.

둥글둥글한 조약돌을 깔아 만든 아기자기한 길과 노란색·분홍색·파란색으로 칠한 파스텔 빛의 건물들, 푸른 평원과 카리브해로 둘러싸인 풍요로운 자연환경까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이국의 풍경을 실망감 없이 재현하고 있는 트리니다드는 연중 수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활기 넘치는 도시면서도 자연도 사람도 때 묻지 않은, 그야말로 완벽한 여행지다. 쿠바를 여러 번 여행하는 남미나 유럽의 여행자들은 이곳에서만 일정을 보내고 돌아간다니 트리니다드는 명실공히 쿠바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진면목인 셈.

2박3일을 동네만 빙빙 돌아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하지만 장기 여행자들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트리니다드에 눌러앉을 수 있는 까닭은 단연코 ‘카사 데 라 무지카(Casa de la musica)’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동네 음악당’쯤으로 표현할 수 있는 쿠바의 이 독특한 문화 공간은 대도시·소도시 가릴 것 없이 동네마다 한두 개씩 있게 마련인데, 밤마다 밴드의 공연이 펼쳐지고 예의 그 ‘춤판’이 벌어지곤 한다.

특히 트리니다드의 카사 데 라 무지카는 개중 최고의 분위기와 공연 수준을 자랑한다. 나무 그늘 아래 운치 있게 꾸며지는 무대나 층층 돌계단으로 자연스레 경사를 이룬 관람석 등 열린 야외 공간이 주는 매력도 특별하거니와 매일 다르게 선보이는 밴드의 연주도 하나같이 수준급.

관객의 호응이나 전반적인 분위기도 가장 뜨겁고 흥겹다. 관광객이나 주민들이나 너나없이 저마다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스스럼없이 무대 가운데로 나와 살사를 추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 벌어진다. 엉덩이에 모터를 단 듯 현란하게 몸을 흔들어대는 그들의 춤 솜씨야 감히 범접하기 힘든 경지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 축제 가운데 섞여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세상 시름을 다 잊을 수 있다.

트리니다드에서 또 하나 추천하고 싶은 일정은 말을 빌려 타고 마을 외곽까지 돌아오는 승마체험 코스다. 쿠바에서는 지방 여러 도시에서 말을 탈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사탕수수 농장이 발달할 만큼 평원이 좋은 트리니다드에서는 특히나 아름답고 흥미로운 라이딩 코스를 경험할 수 있다. 산과 계곡·평원으로 이어지는 라이딩 코스는 한나절부터 하루 코스까지 사정에 맞게 고를 수 있는데 단체가 아니라 인솔자 한 명과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어 한적하게 경치를 만끽하며 말을 달리기에 더할 나위 없다.

카리브해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 비냘레스
카리브해에 면해 있는 나라다 보니 쿠바 곳곳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안 마을과 다이빙 스폿이 즐비하지만 굳이 대형 리조트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비냘레스(Vignales)를 추천하고 싶다. 우리로 치면 속초 정도 될 법한 이 작은 마을은 다운타운이라 해봐야 15분이면 돌아볼 만큼 아담하고 소박한 시골 마을이지만 ‘쿠바의 구이린(桂林)’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계곡과 우거진 녹음, 그만큼 신선한 공기를 자랑한다.

마을 주변의 주요 관광지를 도는 셔틀버스를 타고 투어를 해도 좋지만, 당일에도 다녀올 수 있는 깨끗하고 한적한 해변이 많아 여유 있게 카리브해를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여행사에서 당일 혹은 1박2일 코스의 카리브해 투어가 거의 매일 출발한다. 한나절이면 ‘그 동양인 여자 한국에서 왔다더라’라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해질 만큼 작고 또 서로 친밀한 마을이라 혹 혼자 떠났다 하더라도 절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많은 사람처럼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고 쿠바 여행을 떠났던 화가 사석원은 자신의 저서 『황홀한 쿠바』에서 “함부로 그곳에 가지 마시라. 그곳엔 특별한 것이 있나니, 그리고 그 특별한 것의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테니”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경고처럼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눈부신 햇빛과 생생한 컬러들, 애절하면서도 강렬한 선율에 몸과 마음이 들썩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의 말처럼 쿠바는 ‘약’이었고, 또 ‘황홀한 독’이었으니, 언젠가 제 몸을 주체하기 힘들 만큼 빨리 가고 있다 싶을 즈음, 다시 쿠바에 갈 것이다. 그 느린 템포에 몸을 맡긴 채 영혼을 쉴 수 있도록.

Information
항공편 국내에서 쿠바로 가는 직항은 없다. 캐나다 혹은 중남미 국가들을 거쳐야 하는데, 추천할 만한 여정은 캐나다 토론토를 거쳐 아바나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단, 토론토에서 1박을 해야 할 확률이 높다. 멕시코 칸쿤을 거쳐 갈 수도 있다. LA까지 간 후 칸쿤~아바나로 이동한다.

여행 시기 연중 쾌적한 아열대 기후로 특별히 피할 시기는 없다. 겨울 건기인 11월에서 4월이 성수기로 캐나다와 유럽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때. 우기로 분류되는 5~10월이라도 여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다소 끈적일 정도의 습도를 감수해야겠지만 오히려 작열하는 태양빛과 카리브해의 정열을 만끽하기에 좋다.

추천 일정 쿠바 제2의 도시이자 혁명의 고장인 산티아고 데 쿠바, 체 게바라의 묘지와 기념비가 있는 산타클라라, 남태평양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하는 해안 도시 바라코아 등 쿠바 곳곳을 욕심껏 돌아보려면 한 달은 잡아야 한다. 열흘 남짓 일정으로 휴가를 떠난다면 수도 아바나와 트리니다드·비냘레스에서 3일 정도씩 머무르는 일정을 권한다. 쿠바의 문화와 자연을 여유롭게 느껴 보는 일정.

Tip
1 일상적으로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기초 스페인어만이라도 떼고 가면 좋다 2 쿠바 밤 문화의 9할은 춤! 기본 살사 스텝을 익히고 가면 여행이 백배 즐겁다


중앙m&b 잡지『헤렌』의 기자인 이혜진씨는 모험심과 도전의식이 강한 아가씨로 휴가 때마다 유럽과 동남아는 물론 이집트와 남미까지 배낭여행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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