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는 미국 수출 못한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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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혜(27·사진)씨는 안성시청의 계약직 공무원이다. 직함은 투자유치 전문위원. 그는 요즘 이 지역 명품 쇠고기인 ‘안성마춤 한우’ 수출에 매달려있다. 의욕적으로 일을 벌이긴 했지만 반 년 넘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한우 수출이란 게 길이 꽁꽁 막혀 있는 데다 누구도 엄두를 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작은 시카고의 한 유명 레스토랑 사장 A씨의 제안에서부터였다. 지난해 7월 한국을 찾은 A씨는 안성의 한 식당에서 안성마춤 한우를 맛본 뒤 수입 의사를 밝혔다. A씨는 “일본산 고베 비프를 쓰고 있는데, 맛이 뒤지지 않는 이 한우는 가격이 고베 비프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며 놀라워했다. 고베 비프는 일본에서도 100g당 5400~8000엔(약 5만3000~7만9000원, 등심 기준)에 팔릴 정도로 비싸다. 안성마춤 한우는 100g에 9600원. A씨는 즉석에서 “왜 이런 쇠고기를 수출하지 않느냐”며 샘플을 보내줄 것을 제안했다.

임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벽에 부딪쳤다. 쇠고기 수출은커녕 샘플조차 보낼 길이 없었다. 온갖 수소문 끝에 임씨는 지난해 말 청와대 참여마당신문고를 두드렸다. 청와대에선 “미국으로 축산물을 수출하려면 질병·위생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아직까지 쇠고기 수출을 추진하는 업체가 없어 이런 절차를 밟은 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해당 부처인 옛 농림부로부터는 “미국의 위생 조건과 일치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장기적으로도 쇠고기 수출은 어렵다”는 우울한 얘기만 들었다.

임씨는 “해외에서 한우 쇠고기를 원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내다 팔 길이 아예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수출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주저앉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연계해 놓고 총력전을 벌이고 있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미국과의 한우 수출 협상은 생각조차 않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한우는 미국산 쇠고기에 비해 채산성과 가격경쟁력이 많이 떨어진다”며 “특히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업체가 없어 위생조건 협상을 해도 실익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성마춤농협’과 ‘안성마춤한우회’가 미국 수출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부가 농가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고급 쇠고기 수출은 FTA와 사료 가격 급등으로 위기에 처한 축산 농가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서진교 박사는 “(미국과의 협상에서)쇠고기 시장을 지키기 위해 수비적으로만 갈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200여만 명의 재미 교포가 있는 미국 시장에 한우를 수출하겠다고 공세적으로 나섰어야 한다”며 “한우 품질이 일본산에 못지 않은 만큼 축산 농가가 고품질 한우 생산에 집중하고 정부는 유통·가공·브랜드 활용을 지원하면 한우도 세계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 생활 2년째인 20대의 임씨는 한우 수출 길을 모색하면서 주위로부터 “관둬라. 소용없다. 애써 봤자 안 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한우의 대미 수출에 관한 한 우리 사회의 패배 의식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얘기다. 임씨는 “미국에 쇠고기를 수출하고 있는 나라도 많다”며 “공무원으로 있는 동안 꼭 한우를 미국에 수출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렬·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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