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물류만으론 못먹고 산다” … 홍콩은 문화도시 변신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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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는 현금만 있고 문화가 없다. 홍콩이 런던과 뉴욕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다.”

다음 달 홍콩을 떠나는 영국 영사관의 스티븐 브래들리 총영사가 13일 홍콩 외신기자클럽 이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홍콩의 금융산업은 세계적이지만 문화 소프트웨어가 없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그러자 홍콩 입법의회(국회 격) 알란 렁 카 의원이 즉각 반격했다.

“홍콩이 하루아침에 런던이나 뉴욕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나 홍콩에도 문화 대도시 야망이 있으니 두고 봐라. ”

알란 의원의 자신감은 홍콩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주룽(九龍) 반도 서부지역 문화 프로젝트에 근거하고 있다. 21세기 중반까지 계속될 이 계획은 문화시설 건설뿐 아니라 시민의 문화의식 향상, 학생들의 예술 학습 강화, 예술 영재들의 조기발굴 등 전방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아시아 최고의 금융과 물류·관광 허브에 문화 메카를 더해 세계 최고의 국제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초일류 문화단지=우선 1차 계획에선 1990년대 후반 완공된 주룽반도 서부 지역 바다 매립지(면적 73만㎡)에 2015년까지 192억 홍콩 달러(약 2조3787억원)를 투입해 대형 공연장 등 15개 각종 문화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1만5000석 규모의 초대형 공연장과 2000석 규모의 뮤직홀 등이 포함돼 있다. 시민들이 각종 공연을 부담 없이 즐기도록 하기 위해 중소형 규모의 연극공연장과 극장 7개도 건설한다. 이어 2031년까지 진행되는 2차 계획 기간 중에는 초대형 다기능 극장을 세우는 한편 시내 전체에 크고 작은 문화공간을 만들어 모든 시민이 집 부근에서 선진문화생활을 즐기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조성 배경=홍콩이 이같이 결정한 배경에는 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홍콩은 영국 등 서방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대외 신뢰도가 급락했고 대외 경쟁력도 크게 떨어졌다. 이 때문에 홍콩정부는 문화산업을 유치해 사회 전반에 창조와 혁신의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내부 계획을 세웠다. 공청회에서 시민도 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2003년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 파동으로 모든 논의가 유보됐다가 도널드 창(曾蔭權) 행정장관이 2006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2년 공청회 당시 정무사장(부총리)이었던 도널드 창 행정장관은 “시민들이 문화단지를 원해 놀랐다. 그들은 홍콩 경쟁력의 장애 요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고 말했다. 입법의회는 최근 주룽 서부 문화단지 건설과 향후 운영을 맡을 기구 설립을 위한 법안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올 하반기에 이 법이 제정되면 이르면 연말부터 문화단지 조성 설계와 건설을 시작할 예정이다. ‘서부문화단지 조성을 위한 시민위원회’ 제프리 아우 찬 간사는 “홍콩이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로 발전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문화산업·관광 유치 효과=홍콩 정부는 1단계 공사가 끝나면 매년 26억600만 홍콩달러(약 3312억원)의 지역총생산(GRP) 증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2단계 공사가 마무리되면 GRP는 매년 56억7000만 홍콩달러(약 7060억 원)씩 늘 것으로 기대된다. 고용효과도 적지 않다. 우선 전체 공사 기간 중 3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긴다. 또 1단계 계획이 끝난 다음 해(2016년)에는 각종 예술 분야와 디자인·마케팅·여행업·광고·출판업 등 20여 개 업종에서 2만80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분석됐다. 또 1단계 공사 후 첫해 문화단지 방문 해외 관광객은 190만 명, 각종 공연과 전시회·문화 활동에 참석하는 외국인은 연간 9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홍콩 정부는 내다봤다. 2031년까지 2차 문화시설이 완공되면 방문 관광객은 450만 명으로 늘어나고 이들이 37억 홍콩달러(약 4632억원)를 소비할 것으로 추산됐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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