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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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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코드란 커뮤니케이션·정보의 핵심적 용어다. 기호의 계열을 다른 기호 계열로 바꿀 때의 약속을 뜻한다. 가령 모르스 부호는 문자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보내는 것인데, 그때 문자와 전기신호의 대응을 코드라고 하는 것이다.

컴퓨터 기술용어에도 많이 쓰인다. 데이터를 신호로 바꾸는 과정을 코드화(인코딩)라고 한다. 암호나 약호, 특정 사회나 집단 내 규약과 관례라는 뜻도 있다. 사물을 수치화하는 ‘바코드’가 있고 ‘드레스코드’란 말도 있다. 대통령 전세기를 ‘코드 원’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각종 군사첩보 작전명에도 등장한다.

또 서로 통하면 ‘코드가 맞다’고 하고, 문화현상도 코드라고 부른다. 무의식적이고 문화적인 공유를 코드라 칭하는 것이다. 『컬처코드』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컬처코드란 자신이 속한 문화를 통해 일정한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라고 썼다. 한마디로 코드란 정보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기호 체계,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미디어의 근간이다.

매체역사철학자 W 플루서는 미디어 테크놀로지 발전에 따른 인식과 문화의 변화를 연구하면서 코드를 주요 개념으로 썼다. 이때 코드는 상징을 조작하고 규율하는 체계라는 뜻이다. 그는 인류문화사적 관점에서 세 가지 코드를 제시했다. 선사시대의 그림, 역사시대의 텍스트(문자코드), 그리고 1900년 이후 탈역사시대 영상(초언어 코드)이다. 선사시대 평면 그림은 인간에게 4차원적 시공간을 2차원 평면으로 전환시키는 상징과 상상 능력을 주었다. 이어 문자코드는 추상적 사고와 탈신화화, 선형적 역사 개념을 통해 근대화를 이끌었다. 사진·영화·TV·비디오· 컴퓨터 애니메이션에 이르는 탈역사 영상코드는 인간을 텍스트에서 해방시키면서 그것을 뛰어넘게 한다. 과거 그림처럼 그저 대상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문자화된 개념(이야기)을 다시 영상프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코드가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지상에 등장한다. 그것도 주로 정치적 맥락에서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패거리주의의 상징어가 된 느낌이다. 코드라는 단어의 한국적 코드다. 그러고 보니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이런 기사도 있었다. “노 대통령은 HTML로 구현된 웹사이트 코드를 이해하는 세계 최초의 대통령이다.” 취임식 직후 영국 가디언의 기사다. 여기까지만이었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법했다. 더불어 과거 코드를 비판했던 이들이 새로운 코드가 되는, 코드의 악순환은 제발 없길 바란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