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학력 평가가 필요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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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교조의 반대가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국 단위의 학력진단 평가는 계속해서 시행해야 한다. 이 평가의 일차적인 목적은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초등학교의 학습 내용을 얼마만큼 충실히 배웠는가를 진단해 중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학습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다. 학년말에는 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1년 동안 얼마만큼 공부를 열심히 했는가를 평가할 예정이다.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국 단위의 학력 평가를 실시하는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은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자극을 주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잘 가르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고 엎드려 자거나 장난을 치고, 심지어는 수업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중학교가 제일 심하다. 초등학교는 아직 학생들이 어리기 때문에 비교적 교사의 지시를 따른다. 고등학교는 대학입시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학교가 사각지대다. 학교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육감들이 중학교부터 전국 단위의 학력 평가를 시행하기로 합의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전국 단위의 학력 평가는 단위 학교, 교사, 학생들 모두에게 전국에서 학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객관적으로 알려준다. 우리 학교가 전국에서 어느 정도 수준이며, 내가 가르치는 학급 학생들의 학력이 어떠하며, 학생 개인의 실력이 어떤가를 알려준다. 교사들은 평가 결과를 보면서 자신이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학생들도 전국 단위의 학력 평가 결과를 보면서 자신의 학력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되어 더욱 분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교육청에서는 합리적인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학력이 우수한 학교와 학생들을 열심히 잘 가르치는 교사들을 격려하고, 연수와 사례 발표 등을 통해 다른 학교와 교사들에게 수업과 교과지도 방법 등을 가르쳐 주도록 해야 한다. 학력이 뒤지는 학교에 대해서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해 합리적인 지원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학생들의 가정환경이나 교육여건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인근 학교에 비해 학력이 낮은 학교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파악해 학생들의 학력을 증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의 여러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전국 단위의 학력 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거의 모든 학교는 해마다 학력 평가를 실시해 학교별로 그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심지어 지속적으로 학력이 낮은 학교는 학생들의 폐해를 막기 위해 학교를 폐쇄시키기도 한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다. 학력 평가는 학교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도록 자극을 주고, 합리적인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해 준다. 학력 평가는 이와 함께 학교에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해 준다. 학력 평가에서 어떤 문제가 출제되느냐에 따라 학교교육이 달라질 것이다. 시·도 교육청에서는 학력 평가 문항을 엄선해 미래사회의 주인공들인 학생들이 반드시 학교에서 배우고 익혀야 할 문제들을 출제해 바람직한 교육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교원단체인 전교조도 학력 평가를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학력 평가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진곤 한양대 사회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