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사병 월급 2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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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호 정치부 기자

"3만5000원선인 사병 월급을 20만원으로 올려주겠습니다."

총선을 37일 앞둔 9일, 한나라당이 청년 유권자들을 향해 달콤한 공약을 내놨다.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지금 월급은 청춘을 희생하는 보상치곤 너무 미흡하다"고 했다. 독일 사병 월급은 30만원, 대만은 50만원이라는 사례도 제시했다.

나라의 부름에 2년을 선뜻 바친 젊은이들에게 걸맞은 보상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문제는 돈이다. 한나라당 추산으로 이렇게 되려면 매년 1조2960억원이 필요하다. 현재 사병의 월급예산은 2330억원. 1조630억원이 더 든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5만5000여명의 결식아동 모두에게 따뜻한 세끼 밥을 먹이는 데도 2000억원이면 충분하다는 게 당국의 계산이다.

한나라당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려는가. 그들은 그저 "국방예산을 대폭 올리면 된다"는 설명만 한다. 내친김에 한나라당 측은 "GDP의 2.8%인 국방예산을 외국 평균인 4%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려면 8조1000억원을 증액해야 한다. 올해 정부 예산(118조원)의 7%에 해당하는 돈을 세금으로 한꺼번에 거둬야 한다는 얘기다.

독일.대만과 비교한 것도 우습다. 독일은 1인당 GDP 2만2600달러에 전체 병력은 30만명, 대만도 1만2800달러에 29만명 수준이다. 1인당 GDP 9900달러에 68만명의 군인을 먹여살려야 할 우리와는 처지가 다른 것이다. 또 다른 징병제 채택국가인 이스라엘의 사병월급은 10만원 정도라는 게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측의 설명이다.

선거 때마다 장밋빛 공약(空約)이 난무했던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한나라당만의 일도 아니었다. 지난 16대 총선 때는 "추석.설 연휴에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겠다"(한나라당), "모든 초등학교 학습 준비물을 무상 제공하겠다"(민주당)고 했었다. 정치권은 순진한 국민을 허탈하게 만드는 공약은 자제해 주길 바란다.

남정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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