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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故박홍규 교수 유고집 3·4권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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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대로 된 논문 한편 없었던' 원로 철학자의 강의 유고집이 작고 10주기에 맞춰 발간됐다. 일본 와세다대를 나와 1946~84년 서울대에 재직한 서양고전철학.형이상학 분야의 거목 고 박홍규 교수가 주인공이다.

이번에 동시에 출간된 유고집은 그의 강의를 푼 '형이상학강의2''플라톤 후기철학 강의'(민음사). 9년 전 출간된 '형이상학강의1' '희랍철학 논고'에 이은 것이다. '형이상학강의2'에는 88년부터 작고하기 직전까지의 강의 내용이 수록됐다. 84년 정년퇴임 이후의 강의를 담은 '형이상학강의1'이 서양 고전철학 저서들을 해석한 고난도의 강의라면 '형이상학강의2'는 어느 정도 지적 수준이 있는 독자라면 접근 가능한 강의로, 대중적인 주제에 철학적 사유를 접합한 내용이다.

대표적인 것이 전쟁에 대한 논의. '플라톤과 전쟁'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의는 '철학 형성에 전쟁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국가는 전쟁에 필수불가결한 단위인지'등을 놓고 서양 지성의 지형도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사회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진단하면서 때로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메스를 가한다.

'플라톤 후기철학 강의'는 정년퇴임 전 '정치학'.'티마이오스'등 플라톤 후기 저작을 강독한 이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핵심 내용을 정리한 강의를 편집한 것. 이어 90분짜리 녹음테이프 20여개 분량의 '창조적 진화 강독 1, 2'이 출간되면 6권짜리 전집이 완성된다.

박교수는 논문다운 논문을 남기지 않은 '대가'로 유명하다. 남아있는 몇편의 논문은 학계 풍토가 교수들을 논문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제자들이 '구색을 맞추느라'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들이다.

생전의 박교수는 물흐르는 듯한 명강의로 유명했다. 이태수.김남두(서울대).윤구병(전 충북대.변산공동체대표).이창대(인하대).양문흠(동국대).남경희(이화여대).기종석(건국대).박희영(외대).이정호(방송대).최화(경희대) 교수 등 국내 고전학을 전공한 다서 학자가 그의 명강에 끌렸던 제자들이다.

전집 간행 실무를 담당한 최화 교수는 고 박교수에 대해 "서양 정신과 한국적 상황을 접합한 보석 같은 학자"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오는 14일(일)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남양주 공원묘지에서 10주기 추도식과 전집 봉정식을 연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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