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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브레이크 고장난 환율 … 뛰는 물가에 기름 붓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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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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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학생 아들을 유학 보낸 윤모(48·회사원)씨는 요즘 속이 바짝바짝 탄다. 급등하는 환율 때문이다. 지난해 말 달러당 920원대이던 환율은 11일 970원까지 뛰어올랐다. 그는 “연간 4만 달러를 송금하려면 지난해보다 200만원을 더 보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여행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엔저를 타고 최근 몇 년간 호황을 맞았던 일본 전문 여행사들의 부담이 커졌다. 여행나비의 조현식 사장은 “여행상품 가격을 원화로 표시하던 것을 엔화로 바꿀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기사 e2, e6면>

반면 수출기업들은 얼굴이 펴졌다. 자동차·반도체 등 수출 주력업체의 경우 원-엔 환율 급등으로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

달러·엔 등 주요 통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일제히 급등세(원화 가치 하락)를 보이며 국내 경제에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화의 ‘나홀로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신용경색과 경상수지 적자 등 환율 급등을 초래한 요소들이 쉽게 풀리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요동치는 외환시장=11일 서울 외환시장은 하루 종일 요동쳤다.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980원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2006년 3월 이후 최고치다. 원-엔 환율도 장중 100엔당 965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환율이 치솟고 있는 것은 시장의 수급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달러를 사겠다는 곳은 많은 데 비해 팔겠다는 곳이 적다. 외국인들은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국내 주식을 판 뒤 달러로 바꿔 나가고 있다. 올 들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12조원에 육박한다.

또 3~4월은 배당금을 해외 주주들에게 송금하는 시즌이다. 배당금을 보내려면 달러를 사야 하므로 달러 수요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

여기에다 경상수지는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1월에도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1월 경상수지 적자는 25억 달러로 11년 만에 최대 폭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환율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가 더해지며 폭등 양상이 빚어진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환율이 오를 요소가 부각되면서 시장에선 원화를 들고 있으려는 곳이 없어진 분위기”라고 말했다. 수출업체들은 환율이 더 오를 때까지 달러 매각을 늦추고 있고, 수입업체들은 달러가 나오는 족족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이 현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연구원 송재은 연구위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로 초래된 미국의 신용 경색이 어떻게 풀리느냐가 관건”이라며 “무역수지가 적자인 상황이라 정부도 굳이 시장에 개입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에 직격탄=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에는 분명한 호재다. 현대·기아차 그룹 관계자는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그룹의 매출은 2000억원가량 느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물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 3.9%에 이어 2월에도 3.6% 올랐다. 정부의 올해 전망치 3.3%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소비자물가의 예고편 격인 생산자물가도 지난해 8월 이후 줄곧 상승폭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유가·금속·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가세하며 물가 상승 압박의 강도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원 장채철 수석연구원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환율 상승 효과까지 더해져 물가에 주는 충격은 두 배가 된다”며 “수입 원자재가 비싸지므로 이를 사들여 수출품을 만드는 기업들에도 생각만큼 크게 유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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