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리포트] 좋다는 땅도 잘 골라야 보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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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투자 관련 격언으로 "돈이 생기면 땅에다 묻어두고 그 다음 사람에 투자하라"는 말이 있다. 땅을 먼저 꼽은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이렇듯 땅은 인터넷 시대라는 요즘에도 중요한 투자상품으로 통한다. 서울 강남권의 주요 아파트값이 최근 몇 년 사이 2~3배 올랐다지만 천안.아산.화성 등 신도시 개발지 주변의 노른자위 땅은 같은 기간 최고 10배가량 뛰었고 웬만한 곳도 3~5배 상승해 땅의 진가를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정부가 강도 높은 땅투기 억제책을 잇따라 내놓았는데도 개발 재료가 있는 지역에는 여전히 돈이 몰리고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돈 된다는 땅이라 해도 잘 골라야 보배가 되지,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화근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1999년 외환위기로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때인데도 지방 땅 투자열기는 대단했다. 무안국제공항의 배후단지가 들어설 것이라는 부동산업자의 말만 믿고 전남 무안군 운남면 일대 땅을 산 사람도 적지 않았다. 수십만평의 땅이 서울의 한 기획부동산업소를 통해 팔렸으니 수천명이 이 땅을 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현지에서 평당 2만원 정도 하던 땅이 서울에선 평당 7만~8만원에 팔렸다. 문제는 당시 배후도시가 들어설 것이라던 부동산업자의 얘기대로 운남면 일대는 과연 개발이 추진되고 있을까. 아니다. 개발방침도 없는 데다 허허벌판인 이곳의 땅값은 3만~4만원에 불과하다. 투자금은 반토막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87년 개발 호재로 토지시장이 술렁거렸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의 임야를 평당 4만원에 산 사람의 얘기다. 17년 전에 땅을 샀으니 지금은 엄청나게 올라 돈을 많이 벌었겠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내막은 손해를 보고 말았다.

당시 인근 지역에 기아자동차 공장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으로 땅값이 크게 올랐던 이곳은 기대했던 공장개발의 혜택은 별로 없고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있다가 최근 산업도로 건설이 진행 중이다. 문제의 땅은 수용되어 평당 15만원 정도의 보상가만 받고 국가에 넘겨줘야 했다. 17년 동안 고작 4배 정도 오른 셈이니 금융비용 등을 감안한 투자손실은 계산을 하지 않아도 뻔하다.

요즘의 사례를 하나 더 찾아보자. 지난해 강원도 평창.용평 일대 땅이 많이 팔렸다. 겨울 올림픽이 열리면 큰 돈을 벌 것이라는 중개업자들의 농간이 있었다. 현지 시세가 평당 3만~4만원 하던 봉평면의 한 농지가 서울에서 평당 16만원짜리로 둔갑했다. 이 땅을 산 사람들은 사기를 당한 거나 다름없다.

땅은 잘만 고르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반대로 잘못 사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높은 수익률이 있는 곳에는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들여다보면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는데도 뒤늦게 개발예정지의 땅을 사는 투자자들의 앞날이 매우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최영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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