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뭉칫돈 빌딩에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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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분양되고 있는 금강타워 빌딩은 요즘 층 단위로 팔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달 들어 닷새 동안 6개층 2400여평이 계약됐다.

학교법인이 계약한 3개층을 빼고는 모두 개인이 사들인 것이다. 층당 분양가가 48억원이나 되는 뭉칫돈이 밀려든 것이다.

분양을 맡은 풍화산업개발 장붕익 사장은"동탄지구의 토지 보상비에다 상가를 팔아 1개층을 계약한 경우도 있다"며 "투자할 곳이 마땅찮은 뭉칫돈이 안정된 임대수익을 노리고 빌딩을 계약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신공영이 테헤란로에서 분양 중인 인터밸리 오피스빌딩도 100~200평 단위로 계약하는 투자자가 많다고 한다.

개인들의 뭉칫돈이 요즘 빌딩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특히 경기도 판교와 동탄 신도시 토지 보상이 시작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서울과 분당 등지에서 이 같은 사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빌딩업계 관계자들은 서울의 중소규모 빌딩 시장에 돌아다니는 개인의 뭉칫돈만 해도 3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 강남권이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빌딩 거래가 뜸해진 가운데 빌딩시장의 강력한 매수세력으로 등장해 주목을 끌고 있다.

규제가 많은 토지나 불경기에 허덕이는 상가보다 더 안전한 투자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빌딩 거래를 많이 하는 L사의 김모 팀장은 요즘 50억~100억원대의 빌딩 매입 주문을 많이 받는다. "강남권에 연수익률 8% 이상 되는 빌딩을 소개해 달라"는 고객 요청이 일주일에 서너건이나 된다.

대부분 목돈을 쥐고 있는 개인들이라고 한다. 그는 "판교와 동탄지구에 있는 토지를 수용당하고 받은 보상비를 빌딩에 재투자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한국토지공사 판교사업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판교 신도시의 토지 보상이 시작된 후 지난 5일 현재까지 전체 보상비 2조5000억여원(지주 3000여명) 중 2조1000억여원(2600여명)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토공 관계자는 "보상비를 받은 사람의 70%가 외지인인 점을 감안하면 보상비의 상당 부분이 다른 투자처를 기웃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개 입찰로 곧 매각될 서울 강남구 역삼동 C빌딩에는 10여군데가 입찰에 참여할 계획인데, 이 중 5곳 정도가 개인 참여자로 알려졌다. 빌딩 주인인 C산업 관계자는 "입찰 내정가가 100억원 이내여서 개인투자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직접 덤벼들지 않고 거래은행의 프라이빗 뱅킹(PB)담당자를 통해 물건을 꼼꼼히 분석한 뒤 참여하는 게 특징이다. K은행 강남역지점 PB팀 관계자는 "판교에서 60억여원의 보상비를 받은 한 고객이 이 돈으로 빌딩을 사려 한다"며 "최근 강남권의 소형 빌딩 값이 30~40% 정도 오른 것도 개인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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