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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멋지게 죽어야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와 정민수를 불쌍히 여기며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줄 것같았다.부모가 죽더라도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임희경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까,빌딩 위에서 폼나게 죽을까,한강다리 위에서 매스컴의 집중을 받으며 죽을까 여러 가지로고민을 했다.그리고 드디어 한강다리 위에서 떨어져 죽기로 마음먹었다.자기 과시가 강한 히스테리 환자한테 가장 어울리는 자리고 또 정민수의 뒤를 따라 한강에 빠져 죽으니 남들로부터 충분히 동정을 받으리라.그래서 임희경은 자기 재산을 모두 자식들에게 남겨준다는 유서를 작성하고 한강 다리로 걸어갔다.바람은 마치 바닷바람 같이 쌩쌩 불었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한 사람도없었다.오로지 곁을 지나가는 차들만 복잡하게 왔다갔다 할 뿐이었다.임희경은 다리 아치 앞에 서서 위를 쳐다보았다.아치는 기어올라가기에는 너무 미끄러워 보였다.그러나 노력하면 할 수도 있을 것같았다.임희경은 일단 스타킹을 벗고 손바닥에 침을 뱉은후 아 치를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의외로 아치는 올라가기에 편했다.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보면 너무 무서울 것같아 그냥 위만 보면서 올라갔다.그때 그녀의 밑에서 음침한 사람의 소리가 따라올라왔다.
『당신도 나같은 사람이오?』 그녀는 깜짝 놀라 밑을 내려다 보다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다.그러나 다행히 아래에서 기어올라오는 사람이 임희경의 엉덩이를 받쳐주는 바람에 실족을 면할 수있었다. 『곧 죽을 사람이 더럽게 놀라네.』 그 음침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허름한 거지였다.
『당신은 누구세요?』 『나? 이 다리의 주인이지.이 다리에서자살하려는 사람치고 나를 거쳐가지 않은 사람은 없소.』 『그렇다면 당신은….』 『뭐 그렇다고 경찰이나 형사 나부랭이는 아니니까 걱정마오.나는 단지 자살하려는 사람을 붙들고 잠시 흥정만하면 되니까….
그래 당신은 죽으려는 이유가 뭐요? 아직도 엉덩이가 팽팽한 게 벌써 생을 끝마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데….』 『그 이유를 당신에게 대답해야 해요?』 『물론이지.
나하고 흥정이 끝나기 전에는 자살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자살할수 없어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그냥 강물에 뛰어들면 되지!』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안돼요.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살을 방해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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