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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42> 팬 서비스는 다함이 없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이효리가 축구화와 유니폼을 제대로 갖추고 나와 이운재 또는 첼시 골키퍼 체흐가 지키고 있는 골문을 향해 페널티킥을 차면 어떨까. 의미 없이 허공을 향해 공을 날리는, 경기와 괴리된 ‘의전’으로서의 시축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2005년 5월, 수원 삼성과 첼시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기자는 ‘이효리가 시축을 한다는데’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중앙일보 블로그에 올렸다. 당시 이 글은 별 호응을 얻지 못했고, 이효리도 ‘시축’을 하지 않았다.

3년이 지난 올 3월 9일, 이번에는 탤런트 한지민이 K-리그 FC 서울의 홈 개막전에서 시축을 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서울 한웅수 단장과 통화를 하던 중에 이 소문을 전했다. 한 단장은 “안 그래도 구단 홈페이지에 서포터 몇 명이 페널티킥 시축을 하자고 글을 올렸던데 주동자가 정형이었군요”라며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실무진에 검토를 시키겠다고 했다.

한지민은 서울 골키퍼 김호준이 지키는 골문을 향해 킥을 했다. 빗맞은 공은 ‘아리랑 볼’이 돼 골문 쪽으로 굴러갔다. 그날 밤 인터넷에는 한지민이 시축을 한 뒤에 혀를 내밀고 쑥스럽게 웃는 사진이 올라와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장에 있었던 동료 기자는 “관중의 반응도 좋았고, 재미있었다는 평이었다”고 전했다.

한지민이 시축을 하던 시간, 웰컴투풋볼은 부산에 있었다. 부산 아이파크의 개막전은 여러 모로 관심을 끌었다. 부산 황선홍 감독의 데뷔전, 안정환(부산)과 조재진(전북)의 복귀 맞대결이 예정돼 있었다.

하나 더, 인기 남성그룹 ‘빅뱅’이 하프타임에 공연을 하기로 했다. 여학생 팬이 난리가 났다. 수천 명이 입장권을 예매했고, 경기 전날에는 100여 명의 극성 팬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담요를 뒤집어 쓰고 경기장 앞에서 밤을 새웠다.

관심은 엉뚱한 곳으로 쏠렸다. 빅뱅의 공연이 끝난 뒤 이들 ‘오빠부대’가 경기장을 빠져나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경기를 관전할 것인가였다. 이들은 마지막까지 경기장을 지켰다. 이뿐 아니라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안정환” “최∼강 부산”을 연호하며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부산은 3만2000여 명의 대관중 앞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설치한 5000여 석의 가변 좌석도 큰 호응을 얻었다.

부산은 지난해 성적도, 관중 동원도 사실상 꼴찌였다. 안병모 부산 단장은 “절박한 심정으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자는 각오로 개막전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축구를 잘해야지 쇼만 한다고 되느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잠재적인 축구팬’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야 하지 않을까. 시축 쇼가 됐건, 빅뱅 쇼가 됐건.

정영재 기자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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