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대통령 비상대권" 루이스 피셔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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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전쟁 선포권과 다른 나라 선박에 대한 나포를 허락할 권리,해상과 육상에서의 생포에 관한 규칙을 만들 권리는 의회에 속한다」(미국헌법 제1조 8항).
이처럼 미국헌법은 전쟁선포권이 의회의 고유권한임을 못박고 있다.그런데도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백악관을 거쳐간 대통령 가운데 전쟁을 치르면서 의회의 승인을 받았던 이는 아이젠하워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해리 트루먼에서부터 빌 클린턴대통령까지 이들은 따지고 보면 위헌을 저지른 「범법자」인 셈이다.
그때마다 미국 대통령들은 자신들이 군사령관이라고 강변하거나 유엔결의안 따위를 명분으로 내세우곤 했다.
이때문에 미국 학계에서는 헌법제정자들이 당초 의도했던 행정부.사법부.입법부간의 균형과 견제가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을 줄곧제기해왔다.
최근 미국의회도서관 연구원인 루이스 피셔가 펴낸 『대통령비상대권』(Presidential War Power.University Press of Kansas刊)은 전쟁선포권이 의회에서대통령으로 옮겨가게 된 역사와 배경 등을 체계적 으로 분석한 책이다.한국전쟁이 계기가 되었다 해서 현재 미국 법학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포스트-코리아 신화」(Post-Korea Myth)라고 부른다.
이 책을 보면 트루먼대통령이 의회 승인없이 한국전에 병력을 파견하는 선례를 남긴 이후 미국 대통령들이 해외 파병때마다 의회의 전쟁선포권을 무시하려 노력해왔다는 사실이 생생히 드러난다. 미국의 전쟁선포권은 헌법 제정후 1백년동안은 아무런 탈없이그대로 지켜져 왔었다.전쟁선포권은 의회만 가진다는 데 이의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당초 미국헌법 제정 과정을 보면 헌법 기초자들이 3부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음이 역력히 보인다.초기 입안자들은 대통령의 권한남용을 예방하면서도 대통령에게 외부위협에 신속히 대처할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의회에「전 쟁수행권」(make war)을 주려다 이를「전쟁선언권」(declare war)으로 바꿨다.아울러 軍에 대한 民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대통령을 군사령관으로 정했다.
전쟁선포권이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역사적인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링컨대통령의 남북전쟁,1889년 스페인과의 전쟁끝에 미국 합병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필리핀 민족주의자들과 치른 3년간의 전쟁,1909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대통령의 니카라과 개입,1915년 윌슨대통령의 아이티 침공,1916년의 도미니카공화국 개입,1916년 판초 빌라 추적과정에서의 멕시코 침공 등이 의회 승인없이 치러진 대표적인 전쟁이었다.그러나 남북전쟁은 내전의 성격이 강했고 그외 다른 전쟁도 소규모였기 때문에 현대전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전쟁선포권에 대한 관심은 트루먼대통령이 1950년 의회 승인을 요청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전쟁에 군을 파견하면서 증폭됐다.트루먼은 그같은 조치의 명분으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내세우고 파병에 대해 역사상 처음으로 「치안활동 」(police action)이란 용어를 사용했다.그런 용어에 비해서는 태평양 건너편에서 일어난 전쟁에 전비 1천6백40억달러,사망 3만4천명,부상 10만3천명의 희생은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
의회승인 대신 유엔결의안을 동원한 트루먼의 조치는 헌법의 전쟁선포권 조항을 산산히 부숴버린 정치미사일이었다.당시 의회는 트루먼을 벌하지 않았고 심지어 유명한 법학자들까지도 트루먼을 지지하는 이론을 펼쳤다.
린든 존슨이 1964년 베트남전에 개입하면서 내세운 것은 의회의 통킹만 결의안이었다.월맹측의 공격여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 진실이야 어떻든 존슨의 태도는 북베트남에 대한군사적 대응은 군사령관으로서 자기의 고유권한이라 는 식이었다.
이때도 의회는 행정부가 내세우는 주장의 진위를 검증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자는 전쟁권을 의회가 갖느냐,대통령이 갖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헌법기초자들이 노렸던 3부간의 균형과 견제기능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것이 문제라면서 법학자들에게 그 기능의 회복을 위한 연구활동을 촉구하고 있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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