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팔아 정감 넘치는 방언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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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영천과 경주·포항 등 경북 동남부지역의 방언사전을 펴냈다.

영천이 고향인 정석호(72·부산시 금곡동·사진)씨는 최근 6700여 개의 어휘를 담은 815쪽의 ‘경북동남부 방언사전’을 출간하고 영천시청을 찾아 책을 소개했다.

“아름다운 방언이 표준말에 ‘오염’돼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하나씩 기록하면서 정리해 왔습니다.”

수십년간 민요와 민담 등을 수집해 온 정씨는 1994년부터 방언 수집에 매달렸다. ‘구르마’로 부르는 우차와 관련된 방언을 수집하기 위해 과거 우차를 끌던 어른을 찾아가 막걸리 대접을 하며 잊혀진 말을 찾아내는 등 발품을 팔아 정감 넘치는 방언사전을 만들었다.

“전기 없이 등잔불로 공부하던 시절에는 등유를 일본의 기름이라는 뜻으로 ‘왜지름’이라고 했죠. 사는 것이 어렵다보니 부모들이 ‘왜지름 닳는다. 빨리 자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많이 했습니다.”

또 ‘도독눔 빙’이라는 말은 말라리아 병을 이르는 것으로 이불을 쓰고 떨고 있는 모습이 도둑이 불안해 하는 것과 흡사해 붙여진 말이라고 전했다. 정씨는 각 어휘의 해석과 설명은 물론 어떻게 활용됐는지 등 당시 생활상도 반영했다.  

이번에 수록된 방언은 영천 등지의 농촌에 사는 서민들이 주로 쓰던 말이며, 욕설과 음담패설도 포함시켰다. 정씨는 사전을 내기 전 방언 연구의 권위자인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정씨는 1936년 영천에서 태어나 영천중과 국립체신고를 졸업하고 무선통신기사 등으로 일해 왔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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