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힌 ‘죽음의 상인’ 부트,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돈만 되면 무기 공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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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태국 방콕의 한 호텔에서 6일 체포된 세계 최고의 무기 밀매상 빅토르 부트(41·사진)가 가장 경비가 삼엄한 교도소로 이송됐다고 AFP 통신이 8일 보도했다. 부트는 전날 1차 심리에 나와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미국·러시아·벨기에 정부가 모두 그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태국 경찰은 그를 태국 법정에 세울 뜻을 분명히 했다.

부트가 어떻게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리는 악명의 무기 밀매상이 됐는지에 대해선 여러 설이 존재한다. 부트 자신은 한 인터뷰에서 “25세 때 12만 달러(약 1억1000만원)에 옛 소련 안토노프 수송기를 구매해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소련 군정보기관인 GRU가 소련 붕괴 후 수송기 3대를 그에게 빌려 주고 사용료를 받았다”고 말한다.

아무튼 그는 냉전 이후 수송업계에 혜성같이 등장해 부를 축적했다. 성공 비결은 체계적인 물류 시스템 구축이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사막 도시인 샤르자와 벨기에의 오스텐데를 사업 본부로 삼았다. 위장 회사 수십여 개를 그물같이 엮어 각국 정부기관의 추적을 피했다. 60대의 수송기를 운영하던 그는 옛 소련 수송기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민간 사업자였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도했다.

돈만 된다면 화훼·냉동 육류 같은 합법적인 화물도 수송했다. 1993년엔 소말리아로 벨기에 평화유지군을 날랐고, 94년엔 르완다로 2500명의 프랑스군을 후송했다. 2004년 인도양에서 쓰나미(지진해일)가 발생했을 땐 스리랑카에 인도적 지원품을 수송했다. 주문 받은 상품은 반드시 제 날짜에, 정확한 장소에 배달해 신용이 높았다. 겉으로는 영어·불어·포르투갈어·우즈베크어와 몇 개의 아프리카 언어 등 6개 이상의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비즈니스맨이었다.

하지만 뒤편으론 비행기를 보내 아프리카 중부 자이르의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의 탈출을 돕는 한편 모부투의 축출을 노리던 반군에도 무기를 공급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북부동맹과 탈레반에 동시에 무기를 공급했다. 러시아 정부의 비호를 받고 모스크바에서 자유롭게 지내왔다. 그러다 콜롬비아의 좌익 게릴라인 FARC(콜롬비아 무장혁명군)로 가장한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함정 수사에 빠져 태국에서 무기 거래를 하려다 DEA·태국 경찰에 붙잡혔다. 가디언은 “미국·러시아 등 여러 국가 정보기관에 그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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