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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담배 자판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국의 정가(政街)는 「로비이스트들의 천국」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소리소문없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로는 담배회사들의 로비이스트들이 몇손가락 안에 꼽힌다.특히 최근 몇년새 금연운동이 확산되면서 담배 로비이스트들의 움직임은 두드러지게 활 발해졌다.
이들의 전략은 단순하다.금연운동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담뱃값을올려 이익을 늘리는 한편 국내시장을 넓히면서 외국시장을 개척하는데 최소한의 정치적 도움을 얻는다는 것이다.이들이 조건없이 의회에 기부하는 돈만도 연간 1백만달러를 넘어섰 다.
꼭 그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지난해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점점 거세어지는 금연운동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흡연자는 83년 이래 최고인 5%의 증가율을 기록했고,더욱 충격적인 것은 연령별로 10대 청소년층이 최고의 증가율을 나타냈다는 사실이다.청소년 흡연자의 대부분이 자동판매기를 통해 담배를 구입했다는 점도음미할만한 대목이다.
미국과 일본 담배업자들이 본국은 물론 외국시장에서도 자판기를중요한 담배판매 루트로 삼는 것이 무엇보다 청소년층을 겨냥한 것임은 그것 만으로 명백해진다.
그러나 청소년 흡연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미국도 그흡연율은 아직 20%를 밑돈다.고등학교 3년생을 기준으로 할 때 서너해 전의 한 조사는 우리나라가 44.3%로 세계 1위를기록했다고 한다.
엊그제 한 TV뉴스는 고발 프로에서 여고생들이 휴식시간에 교사(校舍)뒤켠에서 집단흡연하는 장면을 방영해 충격을 주었다.수북이 쌓여있는 담배꽁초 더미가 우리 청소년들의 흡연실태를 한눈에 보여준 것이다.청소년 흡연자들의 대부분이 자동 판매기를 통해 담배를 구입했으리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선 연장자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기본적 예의다.아직 10대인 중.고교생들이 담배가게에서 담배를 사고자 할 때 대개의 경우 가게주인은면박을 주거나 팔지 않는게 보통이다.그 때문에 담배자판기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서울시의회가 임기 마지막 회의에서 서울시에서 담배자판기를 전면 금지토록 한 것은 잘한 일이다.『담배자판기만 보면 피우고 싶어진다』는 몇몇 청소년들의 「고백」을 감안하면 되도록 담배를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 청소년의 흡연율을 낮 추는데 다소나마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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