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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북카페] "의사 선생님도 환자가 되어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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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알마,
272쪽, 1만3500원
원제:Das Ärztehasserbuch. Ein Insider Packt Aus (2007)

차가운 의학, 따뜻한 의사
로렌스 A 사벳 지음,
박재영 옮김
청년의사,
414쪽, 1만5000원
원제:The Human Side of Medicine(2002)

 60대 중반으로 당뇨병을 앓던 여성 환자. 어느 날 혈전증으로 급히 입원했던 그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젊은 의사가 병실에 들렀을 때 그가 불안해하며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전 죽게 되나요?” 의사는 성의 없이 대꾸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의사는 자신의 대답이 참 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만심도 잠시였다. 그는 곧 환자에게 위로나 믿음을 주는 대신 차갑게 상투적인 말을 내뱉은 자신의 모습에 경악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의사로 일하다가 현재 남독일신문의 의학기자로 일하는 베르너 바르텐스의 경험담이다. 그는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에서 의사들의 오만한 태도와 병원의 그릇된 실태를 고발했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얼마나 귀찮아하고, 환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무례하며, 심지어 환자들을 어떻게 거부하는지에 대해서도 실제 벌어진 일들을 예로 들며 낱낱이 보여준다.

비정한 의사들은 “환자만 없었다면 의학은 훌륭한 학문이었을지 모른다”며 낄낄거린다. 한 명의 환자에게 1분도 안 되는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복종을 거부하는 환자’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기며, 특정한 검사를 받을 때 환자가 느낄 수 있는 수치감에 대한 배려도 얄팍하다. 바르텐스는 “대다수의 의사와 간호사가 자신들이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며 동정심과 감정이입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의학 교육이 문제라고 비판한다.

『차가운 의학, 따뜻한 의사』역시 ‘인술’을 강조한다. 그러나 젊은 의사의 성난 고발 방식과는 크게 다르다. 30년간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봐온 베테랑 의사답게 저자는 후배들에게 의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설명한다.

그는 의사라면 심각한 질환을 앓는다는 일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환자들이 의사에게 원하는 것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들의 곁에 있어주고, 그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 ‘환자에게 자신의 견해를 말할 권리를 주라’는 것이다. 환자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여서 정서적으로 발가벗겨진 상태와 같기 때문이다.

질병이 가족 전체의 일이므로 의사들은 가족들이 받을 영향에 대해서도 신경 써야 한다. (바르텐스는 책에서 의사들은 환자의 가족들을 ‘똥파리’처럼 여긴다) 환자가 질병을 어떻게 겪고, 어떻게 느끼고, 그들의 가치관까지 헤아리는 것이 진료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인문사회의학 교재로 쓰일 것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질병을 환자의 삶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보라. 그리고 행간을 읽으라”고 조언하는 대목은 그가 의사라는 직업을 넘어 인본주의적 철학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책 전반에 배어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 덕분에 일반 독자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줄만하다. 깊은 사려심을 갖고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신중하게 사람을 대한다는 게 단지 병원에서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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