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해외 논단

'일방주의 폐기' 외치는 케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존 케리 상원의원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설 민주당 후보로 자리를 굳혔다. 그가 11월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미국의 대외정책이 바뀔 것이다. 문제는 대외정책의 변화 양상이다. 방법론에만 변화가 있을까, 아니면 정책 목표가 바뀔까.

케리의 강점은 성숙한 정치인이란 데 있다. 다른 두 경쟁자는 매력적이지만 검증되지 않았다. 중앙 정치무대에선 상대적으로 신인이다. 케리의 베트남전 참전 경력은 그가 사려깊은 사람임을 입증했다. 그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고 전쟁의 교훈과 정치적 딜레마를 겪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참전했던 전쟁을 비판하면서 여론의 파고와 맞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런 점을 갖추지 못했다. 베트남전 당시 그의 복무 회피 문제는 그의 재선 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부시는 전시(戰時) 대통령이란 모습을 보이기를 좋아한다. 역시 군대 경력이 없는 그의 추종자들 가운데 일부는 전쟁의 확대를 선호한다. 아랍권 국가들과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은 비겁한 행위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신보수주의자들의 이런 주장은 부시의 재선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베트남 전쟁은 10년 동안 계속됐다. 존슨과 닉슨 행정부의 관리들이 '실익 없는 전쟁'이란 진실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도덕적.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현명한 케리는 그런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케리는 기록상으로는 대외정책에서 '전통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세계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 미국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미국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전설'이 있다. 케리도 이 전설에 충실하다. 만약 이 전설의 핵심을 무시한다면 누구도 워싱턴 정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하워드 딘이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민주당 지도부의 경계심과 워싱턴 언론들의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딘은 '전설'을 무시할 것처럼 보였고, 결국 후보로 선출되는 데 실패했다.

전설은 늘 바뀐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전설은 9.11 테러 이후 만들어졌다. 요즘의 전설은 "미국이 정말 '전시상황'에 있으며 군사 보복의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전설은 또 정치.종교적 광신주의에 대한 선전포고가 오히려 그들의 실체를 과장하고 세력을 키워 줄 것이란 동맹국들의 주장을 거부했다. 전설은 미국의 위상을 유일 수퍼파워 또는 패권국가로 간주한다.

대외정책을 둘러싼 지난 7개월간의 논란은 미국이 알카에다와의 '전쟁'을 어떻게 수행하고 동맹국들과는 어떻게 조율하며 궁극적으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을 예고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선택:지배냐 지도냐'란 제목의 신간을 이 달 출판한다. 브레진스키는 태생적으로 지도력(리더십)을 선호한다. 적은 물론 동맹국에 대해서도 지배를 추구하는 부시 행정부의 자세가 테러와의 전쟁은 물론 미국의 국익에도 손해를 가져 왔다고 그는 말했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을 리더로 하는 새로운 글로벌 체제를 요구하는 격변기에 미국이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부시의 대응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브레진스키는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원하는 동시에 모든 나라가 미국의 지도력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리더십을 인정하는 것은 혼란을 피하기 위한 필수요소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부시 행정부의 생각과 그리 동떨어진 것 같지 않다. 단지 더 정중하고 덜 과격할 뿐이다.

케리도 리더십을 선호한다. 하지만 방법을 불문하고 '전지전능한 힘을 갖는' 미국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냉담한 입장인 것 같다. 그는 '국제화된 행동'과 '공통의 대응'과 '일방주의의 폐기'에 대해 말한다. 그는 '제왕적 정책'보다 '집단적 정책'을 주장한다. 이 같은 케리의 대외정책은 보다 더 활발한 선거전의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예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