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80년5월 유일한 반대자 安鍾勳 당시 군수사령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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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0년 5월」이라고 불리는 역사는 세가지 큰 사건을 포함하고 있다.첫째는 5.17 계엄전국확대이고,둘째는 5월18~27일 광주민중항쟁(5.18이라고도 한다),셋째는 5.31 국보위설치다.이중에서 5.17은 5공신군부가 실질적으로 「정권」을 향해 나가는 출발선이었다.신군부는 79년 12.12로 군권(軍權)을 장악한 후 정국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시점과 공간을추구해왔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5.17 바로 그날 신군부는 오전10시30분쯤부터 오후3시까지 전 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극렬한 학생데모를 이유로『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對대통령결의문을 채택한다.오후7시쯤 최규하(崔圭夏)대통령은 결의내용을 수락했다.
5.17의 핵심은「전국계엄」이다.79년 10.26 다음날인 27일 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계엄을 선포했다.이것이 5.
17때 전국계엄으로 격상된 것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지역계엄일때 계엄사령관은 국방부장관의 지휘를받게 되어있다.그런데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 국방장관을 건너뛰고 바로 대통령의 지휘를 받게 된다.계엄사령관(통상 육군참모총장)이 사실상 행정.사법을 통제하게 되는 것이 다.신군부는 사실상의 군정(軍政)인 전국계엄을 통해 정권장악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신군부는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5.17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밀어붙였습니다.이 과정이 검찰조사에서 명확히 밝혀져야 합니다.나는 검찰수사를 기대합니다.』 80년 5월17일에 열렸던 전군주요지휘관회의는 웬만한 참석자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엄숙하고 긴장된 분위기였다.당시 군수사령관(중장)이었던 안종훈(安鍾勳)씨는 회의참석자 44명중 유일하게 명백한 반대의뜻을 표명했던 인물 이다.그는 결국 80년8월 보직에서 해임됐으며 81년1월 예편해야했다.그는 옷을 벗은후 아무 자리도 받지 않고 연금으로 생활해 오고 있다.安씨는 황해도 송림시(松林市)출신으로 49년 월남해 공병3기(육사9기와 동급)로 임관했다.그는 12사단장.국방부조달본부장.육군대학총장등을 역임한 엘리트지휘관이었다.
기자는 16일 安씨의 아파트에서 그와 만났다.
-회의소집은 언제 통보받았습니까.
『부산의 사령부에 있는데 전날 저녁 참모총장비서실에서 전화가걸려왔습니다.밤에 서울로 올라가 다음날 회의에 참석했죠.』 -안건은 미리 들었습니까.
『아닙니다.회의 시작때까지 전국계엄이 논의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언제쯤 발언했습니까.
『주영복장관이 지정해 4~5명정도가 발언한 후였어요.가만히 들어보니까 천편일률적으로 전국계엄을 지지하는데 이건 회의가 아니라 마치 무슨 시나리오가 있어서 그대로 진행되는 것같더라고요.그래서 나는 손을 들어 발언 기회를 요청했지요.아 마 지명을기다렸더라면 뒤로 한참 밀렸을 겁니다.』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나는 평소 군은 정치에 개입하거나 명분없이 학생데모를 진압하는 일 따위에 동원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또 부득이 군이 나서려면 국회나 정부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지요.그런데 그날 보니까 우리 군이 스스로 전국계엄 을 논의하고 있단 말이에요.전국계엄이라는 게 뭡니까.사실상 군정아닙니까.나는 두가지 점을 지적했어요.하나는 군이 개입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거죠.전체여론이 그렇게 하기를 바랄때 국민합의에의해서 해야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 이죠.다른 하나는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데 사전에 계획을 해놓으면 어떻게 회의라고 할 수가 있느냐는 거였어요.』 -발언이 끝난 후는 어떻게 됐습니까.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일어나더니 격앙된 목소리로 한참을 얘기하더군요.그는「이 상태를 놔두면 점점 위험해진다.다수는 계엄을지지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어요.』 -「반대」에 동조한 사람이있습니까.
『뚜렷하게 기억나는 이는 없어요.3~4명만 합세했어도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었는데….』 -반대하면서 서명에는 왜 동참했습니까. 『사실 그때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어야 하는데….지금도 제일 후회스러운 부분입니다.』 -부대로 돌아간 후에 불이익은 없었습니까.
『나중에 전해들으니 신군부측이 나를 연행해 조사하려고 했는데하나회의 누군가가「그러면 군이 동요한다」며 반대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연행은 모면했습니다.그렇게 지내다가 8월15일 해임됐습니다.』 신군부는 원래 17일 회의에서 계엄확대 외에「국보위설치,국회해산」건의도 통과시킬 계획이었다고 한다.그런데 유병현(柳炳賢)합참의장이 회의 직전 이의를 제기해 이는 빠졌다는 것이다.다음은 柳씨가 16일 中央日報에 밝힌 내용이다.
『회의 시작 30분전쯤 주영복장관을 찾아가 안건이 무엇인지 물었다.주장관은 착잡한 표정으로「오늘 아침 권정달 보안사정보처장이 나에게 설명했다」고 했다.전국계엄.국보위설치.국회해산 등이라는 것이다.나는「군이 할수 있는 선을 넘는다면 자손대대로 오명을 벗기 힘들다.계엄상황인만큼 군지도자들이 모여 계엄확대를논의할 수는 있다.그러나 국보위설치나 국회해산등의 논의는 군의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다」고 말했다.15분쯤 지난뒤 3군 참모총장들이 장관실에 들어오자 주장관은 나에게 다시 얘기해달라고 했다.나는 반복했고 주장관이 나의 의견을 받아들였는지 회의에서 국보위.국회해산 얘기는 없었다.』 〈金 璡.辛聖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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