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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연의패션리포트] 레드 카펫 위의 드레스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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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나 칸의 트로피가 어떤 배우의 손에 돌아갔는지보다 어떤 여배우가 어떤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 위에 서는지가 더욱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갈수록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시상식 드레스. 그 화려한 순간을 되짚어본다.

 

왼쪽부터 김아중, 귀네스 팰트로, 니콜 키드먼.

스크린과 무대 위의 스타들이 가장 빛나는 곳은 바로 레드 카펫 위가 아닐까. 자신의 작업에 대한 평가와 축하를 받는 자리인 만큼 예의를 갖추어 차려 입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에는 국내 스타들의 레드 카펫 스타일도 할리우드 스타들 못지않게 과감하고 패셔너블해져 더욱 흥미진진하다. 거창한 해외 영화제나 연말 시상식이 아니라 해도 최근에는 1년 내내 각종 크고 작은 시상식과 파티가 열린다. 대중은 레드 카펫 룩에 대해 나름대로 점수를 매기고 베스트와 워스트를 선정하면서 스타들의 또 다른 재능인 패션 센스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여배우들이 ‘드레스다운’ 드레스를 레드 카펫 위에서 입은 지는 3년도 안 된다. 1990년대 말부터 제법 과감하고 매력적인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는 김혜수가 유일했을 정도다. 2000년에 열렸던 청룡 영화제에서 그가 선보였던 V 라인이 가슴 깊이 파인 흰 색의 구찌 롱 드레스는 어느 여배우도 흉내낼 수 없었던 기념비적인 레드 카펫 드레스 스타일이었다. 여배우들이 너도 나도 화려한 ‘레드 카펫의 밤’에 과감한 노출과 완벽한 드레스 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그 뒤 4~5년이 지나서다. ‘칸의 여인’ 전도연이 입었던 청동빛으로 번쩍이던 랄프 로렌 드레스나, 장진영이 청룡영화제에서 입었던 차이나풍의 푸른 드레스, 그리고 수많은 롱드레스 사이에서 김아중이 선택했던 깜찍하면서도 섹시한 각선미를 보여준 깃털 달린 미니 드레스 등은 ‘베스트 레드 카펫 룩’으로 꼽힌다.

김혜수

올해로 80회를 맞이한 오스카 상을 둘러싼 할리우드의 ‘드레스 전쟁’은 어땠을까. 수많은 여배우를 ‘패셔니스타’ 반열에 올려놓거나 혹은 ‘워스트 드레서’로 낙인 찍는 자리가 바로 오스카의 레드 카펫 위다. 현재까지도 입에 오르내리는 워스트 스타일로는 뮤지션 비욕의 ‘백조 드레스’. 워낙 독특한 취향을 가진 아티스트라 드레스를 고르는 취향도 좀 특별했으나 패션 비평가들은 ‘지나치다’고 악평했다. 가장 아름다웠던 레드 카펫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은 기네스 팰트로의 랄프 로렌 핑크 드레스다. 전통적으로 심플한 H라인으로 떨어지는 드레스가 대체로 좋은 점수를 받는데 이 드레스는 풍성한 A라인으로 떨어진다. 금발의 우아한 미소와 자태를 지닌 귀네스 팰트로가 이 사랑스러운 드레스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거기에 깔끔하게 빗어 넘긴 헤어 스타일과 심플하지만 최고급의 화이트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악센트를 주었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여성 복서 역할로 순식간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되어버린 힐러리 스웡크가 오스카를 거머쥐던 날 입었던 감색 드레스 역시 잊을 수 없다. 턱 바로 밑까지 올라온 목선이 앞 모습을 우아하게 만들고, 뒷모습은 깜짝 놀랄 만큼 엉덩이까지 파여 있는 파격적인 드레스였다. 전통적인 아름다움과는 살짝 거리가 있으나 재미있는 스타일로 패션사에 기록되는 레드 카펫 룩도 있다. 샤론 스톤은 98년 오스카 시상식 드레스로 남자친구가 입었던 흰색 드레스 셔츠를 선택했다. (물론 아래는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가 디자인한 로맨틱한 핑크색 롱 스커트를 함께 매치했지만) 그가 보여준 의외의 스타일링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대담함과 유머가 깃들여져 더욱 빛났다.

때로는 레드 카펫 룩이 개인의 신상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가‘지상 최고의 커플’로 꼽히던 시절, 키드먼은 디오르의 화려한 골드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톰 크루즈와 헤어진 뒤에는 블랙이나 그레이, 실버처럼 차분한 색의 드레스를 선택했다. 여류 작가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했던 ‘디 아워스’로 오스카를 거머쥐던 날 밤, 키드먼은 파스텔 톤의 연보랏빛 드레스를 입고 승리를 자축했다. 그 뒤 레드 같은 강렬한 색의 드레스로 레드 카펫 위에 컴백했다.

카메라 세례를 받는 배우들의 스타일을 둘러싼 브랜드 간의 마케팅 전쟁이야 ‘커튼’ 뒤의 이야기일 것이고, 팬들은 오직 그들의 멋진 모습에 즐거우면 그만이다.

강주연 패션잡지 엘르(ELLE)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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