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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언론에 싸움 거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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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언론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12일 슈뢰더 총리 측이 우파 악셀슈프링거 계열 황색지인 빌트지 기자의 해외순방 동승 취재를 거절했다. 벨라 안다 정부 대변인은 "특정 언론사를 차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용기의 좌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언론계에선 슈뢰더가 자신에게 비판적이었던 기사를 빌미로 빌트지에 보복조치를 취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슈뢰더의 그런 속내는 곧 가감 없이 드러났다. 안다 대변인은 4일 '모니터'란 공영 TV프로그램에 나와 "슈뢰더 총리는 편파보도를 일삼는 빌트지를 더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슈뢰더는 시사주간 슈테른지와도 대화를 끊었다. 역시 비판적인 기사내용이 문제였다. 그러자 독일 언론계가 들끓었다. 시사주간 슈피겔은 "슈뢰더가 빌트와 슈테른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 이유는 딴 데 있다"고 풀이했다.

지지도가 야당의 절반 수준인 24%대로 곤두박질치고 있어 당내 반발을 무마하려 한다는 것이다. 공동의 적을 만들어 위기를 면해보겠다는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메디엔 테노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슈뢰더의 최근 발언 2112건에 대해 빌트지나 그 자매지인 디 벨트의 비판 수준은 조사 대상인 33개 매체 가운데 평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슈뢰더의 측근 인사가 발행인인 주간 디 차이트가 더 신랄한 비판을 퍼부은 것으로 조사됐다.

슈뢰더는 빼어난 말솜씨를 무기로 언론의 각광을 받아와 미디어 총리란 별명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언론을 상대로 시비를 벌이고 있다. 언론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모르기 때문일까.

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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