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노무현’ 시절 요트 가르친 일본인 이노우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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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서부 시가(滋賀)현 오츠(大津)시에 일본인이 세운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이 있다. 일본 최대 호수인 비와호(琵琶湖) 변에 자리 잡은 BSC 수상레저 스포츠 센터의 건물 한 동이 노 대통령 기념관이다. 스포츠 센터 운영자인 이노우에 요시오(井上良夫·57)라는 일본인이 세웠다.

기념관 안에는 이노우에와 노 전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과 노 대통령이 쓴 편지·메모·서류 등이 유리액자에 끼워져 보관돼 있다. 이노우에는 노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요트 강습을 받을 당시 작성했던 등록서류 같은 소소한 자료까지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현지에서 이노우에를 만났다.

-노 전 대통령과는 어떤 인연인가?

“1982년 부산의 변호사였던 노무현씨 일행이 영국왕립요트협회 자격증 보유자인 나에게 요트를 배우러 왔다. 1주일 체류 일정에 맞춰 다소 빡빡하게 훈련 시간표를 짰더니 ‘우리는 술도 마시고 즐겁게 지내려고 온 건데 이건 너무하다’며 이틀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웃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요트를 배웁시다’라고 설득했고 결국, 서로 잊을 수 없는 친구가 됐다. 엄격한 훈련 시간표를 보고 그분이 ‘마치 군대생활 같다’고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지인에게 일본어 번역을 부탁, 20쪽이나 되는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과연 그분답지 않은가(웃음). 편지의 말미엔 ‘오륙도 요트 클럽 회장 노무현’이라고 적혀있다. 난 그 편지를 ‘노 전 대통령의 러브레터’라고 부르며 아낀다. 그분은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요트를 배우러 왔다.”

-편지 내용은?

“‘우리들 가슴 속에 애정이 싹텄고, 돌아갈 때 미련이 남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간 뒤 6개월 동안 일본어 공부에 몰두해 거의 마스터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기념관은 어떻게 만들었나.

“그분이 대통령이 된 뒤 그 분과의 인연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이곳에 남아있는 각종 흔적과 자료를 모아 2003년 6월 기념관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한일 청소년 교류에 힘 쓰겠다고 결심, 매년 여름 공동 캠프를 열고 있다. 한국 초등학생들이 ‘일본은 무서운 나라라고 배웠는데 막상 와보니 친근한 사람도 많다’고 했을 때 참 기뻤다. 앞으로도 이런 교류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아내 게이코(桂子·51)는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 이후 한국어 공부를 시작, 지금은 일상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다.”

-5년 전 그분이 한국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내가 아는 사람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니, 대단하지 않나.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2005년 우리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해줘 매우 감사했다. 함께 한일 교류의 뜻도 되새겼다. 사실 2000년 그분이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었을 때만 해도 친구분들이 ‘저 사람,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 거다’라고 하기에 ‘설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웃어넘겼다. 나중에 진짜로 대통령이 되기에 놀랐다.”

-임기를 마친 노 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에게 그분은 ‘절망과 좌절 속에서 살아남는 남자’다. 조만간 요트 교류 건으로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에 갈 예정인데 그 때 가능하면 꼭 만나고 싶다. 이젠 편히 쉴 때도 되었으니 즐겁게 요트를 함께 타고 싶다. 노 전 대통령님, 어떻습니까?”

오츠(일본 시가현)=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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