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와대 사람들 “청와주식회사 사원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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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청와대 비서관들의 근무 공간인 여민관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김인종 경호처장. [사진=김경빈 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일하는 청와대 사람들의 코에서 단내가 나고 있다.

“노예 생활이라고 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한 직원의 말처럼 청와대 사람들은 ‘새벽형+올빼미형’ ‘머신(기계)’으로 불리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새벽 일을 권장하는 이 대통령의 취향 때문에 새벽형 인간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사람이 많다. 애주가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소 술을 즐겼던 한 비서관은 청와대에 들어온 뒤 저녁 약속은 꿈도 못 꾸고 오후 10시면 집으로 직행해 잠을 청한다. 생활 패턴을 뜯어고치겠다는 몸부림이다. 이 기회에 아예 술을 끊겠다는 사람까지 있다.

전화통화는 더욱 조심스럽다. 이 대통령이 최근 “비서관의 말이 곧 대통령의 말”이라며 보안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통화를 위해 자신의 휴대전화 대신 친구나 부인의 휴대전화를 빌려 쓰는 직원도 많다.

그동안 타던 고급 승용차를 팔아 치우고, 연비가 좋은 디젤 차량으로 바꿔 타는 직원들도 생기고 있다. 효율과 에너지 절약을 몸에 익히라는 대통령의 지침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청와대 직원들과 점심식사 약속을 잡기도 쉽지 않다. 이 대통령은 점심시간에도 불쑥불쑥 수석 비서관들을 집무실로 불러 업무를 논의한다. 수석이 불려가면 그 아래 비서관·행정관들이 일찍 자리를 뜨기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비서관이나 행정관들과 점심 약속을 잡으려면 “12시40분쯤 늦은 점심을 먹는 게 어떠냐. 그때쯤이면 괜찮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29일 첫 확대 비서관 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강조한 ‘비서관 행동지침 십계명’을 표로 정리한 기사를 책상 위에 오려 붙인 비서관도 늘어나고 있다. 한 비서관은 “청와대가 아니라 마치 청와주식회사에 근무하는 회사원 같다”고도 말했다.

새 정부 초반 이처럼 ‘군기’가 바짝 잡혀 있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5일 이 대통령이 청와대 내 비서동을 방문했다.

자신의 지시에 따라 비서관실 내부 칸막이가 바뀐 걸 본 이 대통령은 “칸막이를 낮추니 일하는 데 좋지 않으냐. 공개적인 것이 불편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그러나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많은 듯 공장 순시를 나온 대기업 CEO처럼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아직도 허물 벽이 많다. 비서동 출입구에서 사무실까지의 불필요한 벽과 칸막이를 빼면 공간이 늘어난다” “공간 활용을 위해 숨은 2㎝를 더 찾아라” “수석실에 햇볕이 들어오는데 굳이 전깃불을 켜 놓을 필요가 있느냐. 점심 식사 때는 끄도록 하라” “중소기업 비서관실이나 민원실처럼 외부 방문객이 많은 곳은 공간을 넓혀라” 등등.

이 대통령은 비서동 안의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도 함께했다. 메뉴가 김치·어묵조림·조기구이·된장찌개인 2500원짜리 식사를 하며 “이게 원래 내 체질이다. 내 체질에 맞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물가 대책과 관련해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연간 300억 달러에 달하는 대일 무역수지 적자 극복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10일 시작되는 부처별 업무 보고는 너무 뻔한 얘기가 아닌 살아있는 보고가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서승욱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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