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고생가출촌>2.자기발로 찾아가는 유흥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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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학교 친구들 사이에선 가리봉동.화양동.천호동에 가면 금방 취직이 되니까 가출해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어요.』 8일 오후8시 서울구로구가리봉동 구로공단오거리 뒷골목 속칭 「텍사스」촌 한켠에 자리잡은 G살롱앞.짙은화장,초미니 스커트 차림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종업원 李모(15)양은 거리낌없이 자진해서 술집을 찾았다고 말한다.
『다 자기 발로 온거지.요즘은 납치할 필요가 없어요.일좀 시켜달라고 난리니까 우린 골라쓰면 돼요.월급도 꼬박꼬박 주고 그만두고 싶다면 붙잡지도 않아요.』 「삼촌」으로 불리는 이웃 P주점 지배인 K(19)군은 가출촌등에 구인광고 쪽지만 붙여놓으면 여종업원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텍사스거리를 비롯,「가출촌」반경 1백50m내에는 단란주점.룸살롱.카페등 각종 술집들이 2백개나 된다 .가출촌에서 기거하는 가출 여중고생 대부분이 이곳에서 술시중을 든다.
오후 11시 텍사스거리 B주점앞.술이 약간 취한 넥타이차림의30대 초반 2명이 나타나자 담배를 피우고있던 16살가량의 소년이 급히 달려간다.『우리 가게 여자애들은 다 17살 이하인데끝내준다』며 술집안으로 잡아끈다.
B주점 마담은 16살난 金모양.지난해 5월 J여중2년때 가출한 뒤 이 바닥 경력 1년만에 진급(?),15,16세인 다른 가출소녀 2명을「새끼」로 관리하며 손님들에게 웃음을 판다.
金양은 오후6~8시 사이에 출근해 손님이 없을 땐 이튿날 오전 2시,많을땐 오전 5시까지 손님 접대를 한다.
인근 C카페에서 만난 종업원 鄭모(15)양이 털어놓은 부끄러움도 못느끼는 듯한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다.
『거의 매일 손님하고 밖에 나가요.처음엔 좀 이상했는데 어차피 버린 몸인데요 뭐….』 이들이 손님으로부터 받는 팁은 한 테이블에 3만원이지만 이중 2만원은「삼촌」이 거둬간다.
가출 여중고생들은 가리봉동 일대에서만 밤생활을 하는게 아니다.인근 신림동.대방동.영등포동.시흥동.광명시로도「출장」을 간다.어린 소녀들에게 이곳 생활은 마치 마약과 같다.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가출촌」입구의 M슈퍼마켓 주인 박모(41.여)씨의 증언.
『가출한 딸을 찾으려고 사진을 들고 골목마다 헤매는 부모들이많습니다.어쩌다가 간신히 찾아 데려가는 경우가 있지만 며칠 지나면 그 부모가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접대부로일하다 경찰에 적발돼 지난달 12일 귀가조치된 盧모(17.J여상 3년)양등 4명중 3명이 2주일만에 다시 가출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가출 여중고생들이 죄의식도 없이 독버섯같은 유흥업소에 찾아가는데는 행정당국의 느슨한 단속도 한몫을 한다.
이날 저녁 가리봉동 일대를 순찰하던 한 경찰관은 『술집 여종업원들이 다 가출한 10대 여중고생인걸 알지만 손님들과 싸우지만 않으면 단속은 안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가리봉동 가출촌에서는 미성년자를 술집 종업원으로 고용하면 처벌하는 풍속영업의 규제등에 관한 법률이 휴지조각인 셈이다. 〈朱宰勳.金玄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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