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은 듣고 장관이 말하는 국무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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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앞으로 국무회의를 국정토론장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정규 국무회의(매주 화요일 오전) 외에 의제에 따라 오후에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밤늦도록 난상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회의장도 미국 내각회의처럼 대통령이 국무위원 가운데에 앉는 식으로 바꿨다. 토론 보안을 위해 배석자를 줄였다. 국무위원들이 직접 차를 타 마시게 했다. 새 풍경이다.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한다’고 헌법에 규정돼 있다. 따라서 국무위원이 자기 부처 소관 업무를 넘어 모든 국정에 관여하는 것은 일종의 헌법상 의무다. 그러나 역대 국무회의는 법령과 안건을 단순히 통과시키는 기능에 치우쳤다. 형식적 법적 요건을 채우는 게 고작이었다. 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한 비율은 9%와 6%에 불과했다. 주요 국정은 청와대에서, 혹은 권력의 이너서클에서 결정되고 국무회의는 고무도장 노릇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토론 기능을 강조했다. 그러나 노 정부의 국무회의가 실질적 토론 기능을 제대로 발휘했는지는 의문이다. 노 대통령은 세세한 정책에 대해선 어느 정도 토론했다. 그러나 중요 국정 노선이나 정치 현안엔 그러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경박하고 무책임한 발언으로 회의가 사고(事故)의 장이 되어 버린 적이 적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임기를 다 마칠 수 없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고, 여야 대선주자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말씀’에 어느 국무위원 한 사람 토를 달거나 반박하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과연 이런 현실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개선될 수 있을까. 국무위원이 활발히 얘기하려면 대통령이 듣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토론의 생명력은 듣는 데 있다. 반대·비판 의견에 불이익이 없다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 오히려 제대로 된 반대는 격려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돌파력과 신속한 성취를 중시한다. 그가 지루한 토론을 참아낼 수 있을까. 얼마나 포용력을 보여줄까.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