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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베를린여성 집단 性폭행-2차대전당시 피해 첫 주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유럽 전역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 50주년 행사를 성대히 베풀고 있는 가운데 독일에서는 50년만에 처음으로 『우리도 제2차 대전의 피해자』라는 반론이 조심스럽게 되살아나고 있다.독일의 항변은 특히「마지막 전쟁」이라고 불렸던 베를린 여성에 대한 연합국 진영의 집단강간에 모아지고 있다.
전쟁 말기 베를린은 여자의 도시였다.젊은 남자는 전선으로 끌려나가 베를린에는 여자 2명에 남자 한명꼴도 안됐다.
그러나 히틀러는 나치독일의 패망이 뻔한데도『독일이 망하면 야만적인 소비에트軍이 베를린을 휩쓸 것』이라며 최후항전을 명령,피해를 확산시켰다.『괴물같은 소비에트군은 노인과 어린이들을 죽이고 여성과 소녀들을 성의 노예로 만들며,살아남은 나머지는 시베리아로 끌고 갈 것』이라고 항전을 부추겼다.
이 때문에 2천만명의 희생자를 냈던 러시아는 다시 베를린 점령작전에 1천5백대 탱크를 투입했다.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베를린 중심부 브란덴부르크門을 들어선 러시아 병사들은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베를린 병원기록과 출산율을 토대로 한 최근의 연구 결과적어도 11만명의 베를린 여성들이 러시아 병사들에 의해 강간당한 것으로 조사됐다.상당수는 집단강간당했고,수차례에 걸쳐 당한여성들도 많았다.
베를린 함락 직후 수주간 많은 러시아 장병들이 강간혐의로 조사를 받았지만 처벌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베를린 여성에 대한 性학대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당시 14세때 3명의 러시아 병사에게 당했던 마리아 고르레니아는『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당해 당시 이런 일을 말하는 것조차 터부시했다』고 말했다.또 당시 25세였던 잉겔보르그 진스는『단지 강간을 피하기 위해 남편의 도움 으로 석탄더미 속에서 갇혀지냈다』고 말했다.
진스는『길 건너편 40대 독신여성의 집 앞에는 항상 러시아 병사들이 긴 줄을 이루어 차례로 강간을 했다』고 회고했다.
[AP=聯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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