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눈>중국 권력투쟁설의 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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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 중국 공산당은 권력암투의 격동에 휩싸여 있는가.최근 주요 국내 언론들이 덩샤오핑(鄧小平)의 사망 임박설과 맞물린 중국 당국의 부패척결 캠페인을 권력투쟁으로 규정짓고 급박한 상황으로 보도하고 있다.이는 일부 홍콩언론,특히 대만 계 신문들의백가쟁명(百家爭鳴)식 보도에 적잖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중국당국은 부패척결을 위한 성역없는 조사만 확인해줄 뿐 홍콩이나 일부 서방통신 보도를 정면 부인하고 있다.
기자가 홍콩특파원으로 중국을 관찰하던 85~90년사이에도 홍콩신문은 물론,이를 여과없이 전재했던 일부 한국언론에 鄧위독설은 십여차례나 보도됐다.다만 鄧이 비록 정치적으론 오뚝이(不倒翁)지만 그의 나이가 91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천 수(天壽)의끝을 향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문제는 鄧의 중국 권력구조에서의 위치와 그의 타계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다.
鄧은 현재 중국 현실정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봐야 한다.그는 89년 공식 은퇴를 선언했고,92년 14차 당대회는 60代의 제3세대 지도체제를 정식 출범시켰다.마오쩌둥(毛澤東)의「말년의 과오」를 절감했던 그의 결단이 었다.
鄧에 의해 간택된 장쩌민(江澤民)총서기.리펑(李鵬)총리.차오스(喬石)전인대 상무위원장등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는 92년 당대회에서 확고한 기틀을 잡았다.鄧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고 일정기간 한 배를 탄 3인2각(三人二脚)의 공동운명체라 할 수 있다.이들의 집단지도체제는 마치 확실한 지배주주가 없는주식회사에 비할 수 있다.江의 지분이 제일 많지만 李.喬와 큰차가 없어 일방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부 언론이 江의 「비등화」(非鄧化)나,江.李.喬 3인 내부의 권력투쟁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현재로선 동의하기 어렵다.설사 이들이 이견을 보인다 해도 「개혁 개방의 틀」과 자신들이 탄 배가 침몰하지 않는 범 위 내라고 봐야 한다.
舊소련 분열의 교훈도 있다.또한 현 지도부에 대항 가능한 반대세력도 뚜렷하지 않다.
다만 李총리의 5년임기가 끝나는 97년 가을로 갈수록 그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적지 않다.천안문(天安門)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前당총서기등의 복권문제도 불씨로 남아있다.정작 현 지도부가 안고 있는 최대의 난제 는 15년간의 개혁 개방 과정에서 나타난 부정부패.인플레.빈부격차등이다.
더구나 이같은 문제가 폭발했던 6.4천안문사태 6주기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鄧의 건강문제까지 물려있다.
현지도부의 강도높은 부패척결 운동은 바로 이를 겨냥한 민심 수습용 카드로 해석된다.鄧가족에 대한 참고인 조사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 없으나 이는 면죄부 성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것 같다.이 캠페인을 통해 민심도 얻고 그간 껄 끄러웠던 천시퉁(陳希同)북경시당서기등도 제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얻을 수있다. 관건은 이 캠페인을 어느 선에서 마무리짓느냐에 있다.만일 캠페인이 지도부의 통제가 어려운 선까지 확대될 경우 중국은걷잡을 수 없는 난기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문화혁명의교훈을 지도부나 인민들이 되새길 것이다.
중국 인민의 수준이나 정치구조가 毛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그럼에도 중국 관찰자들이 毛시대의 권력암투라는 도식으로 중국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시대가 변하면 시각도 바뀌어 야 하지 않을까. 〈산업부장.前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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