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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원류를찾아서>고대건축의 寶庫 룩소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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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사막의 모래만이 그 풍요를 능가하리라.』호메로스(Homeros)가 『일리아스』에서 노래했던 3천여년전 세계 최대 도시 룩소르(Luxor).이민족 왕조 힉소스(Hyksos)를 축출하고 나일강 중류에서 일어난 제18대 왕조가 상류국과 하류국 으로 분리되어 있던 이집트를 통일하고 국토를 수단에서 시리아까지 넓혀 제25대 왕조때까지 번영하던 이집트 역사상 가장 자랑스럽던시절의 수도다.
아스완에서 유람선을 타고 한나절 내려오면 나일강이 급커브를 그리며 들판이 넓어지고,한가로이 노니는 범선의 돛 사이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오벨리스크와 함께 우람한 돌기둥이 우뚝우뚝 솟은 룩소르 신전의 위용이 전개된다.
이 지방 사람들이 태고적부터 믿어온 태양의 神 아문(Amun)의 아들 콘수(Khonsu)의 신화에 빗대어 자신의 출생을 신성시하려 한 아몬 오피스(Amon-Ofis)3세가 기원전 14세기 중엽 흑인 왕국 누비아(Nubia)를 물리 치고 아문神에게 바치는 신전을 건립한 것이다.
그후 제19대 왕조의 람세스(Ramses)2세는 히타이트(Hittite)군과의 전투에서 적군에게 포위되었다 가까스로 구원군이 도착해 살아난 다음 적을 다시 공격해 섬멸하고 히타이트 왕의 딸까지 얻어 개선하였는데,그는 이것이 아문神 의 계시에 의한 것이었다고 굳게 믿고 룩소르 신전을 대폭 확장하기 시작했다. 옛 신전 앞에 더욱 거대한 신전을 세우고 탑문(pylon)앞엔 자신의 석상과 함께 하늘을 찌를 듯한 오벨리스크 두개를세웠다(그 하나는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로 실려가 지금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서 있다).
성벽에는 그가 이역만리 전장에서 이룩한 전공을 설명하는 그림과 상형문자들이 가득했다.
내 이역만리 변경에서 기도하다니 먼 남녘의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에 그 기도가 들렸도다.
태양神(Amun)이 날 부르심을 알매 그의 손을 잡사와 용맹을 얻었나니.
태양神이시여,바람神(Shu)이시여.
당신은 모든 神 가운데 최고이시니, 하늘에 사방으로 이는 바람처럼 분명히 그러하시니.
『오늘날 우리가 3천5백년전의 기록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1799년 알렉산드리아의 한 공사장에서 발견된 로제타(Rosetta)의 석편 때문이지요.그 조그마한 석편의 윗부분과 중앙에는 고대 이집트 문자와 중기 이집트 문자가 새겨 져 있었고,아래 부분에는 그리스어로 번역이 되어 있었답니다.이 석편의 해독으로 고대 이집트 역사가 열린 것이지요.』안내인은 나의 이름을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로 써주었다.
옛날 룩소르 신전에서 멀리 10리 밖에 보이는 카르나크(Karnak)신전까지 이어진 대로에는 인간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 석상이 가로수처럼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나일강의 범람이끝난 후 19일째 되는 날부터 아문神을 기리는 축 제가 이 대로에서 보름동안이나 열렸다고 한다.
수십만평의 대지 위에 세워진 카르나크 신전은 그 규모가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스핑크스가 좌우로 늘어선 연도를 따라 제30대 그리스 프톨레마이오스왕조때 세운 탑문을 들어서면 제25대 에티오피아 왕조때 세운 거대한 돌기둥이 늘어서 있 다.궁정 오른쪽에는 로마인들이 세운 신전이 우뚝 서 있다.
외래 통치자들이 세운 신전을 지나면 강토를 넓혀 유명한 제19대 왕조의 세티 1세와 그의 아들 람세스 2세가 세운 거대한탑문이 앞을 가로막는다.탑문 안에는 열명이 안아도 벅찰만큼 굵은 돌기둥 수백개가 하늘의 무게를 받치고 있어 대낮에도 컴컴하다.이 장대한 열주(列柱)하나하나엔 리비아와 시리아 원정에서 거둔 승전보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다시 더 들어가면 아스완의 흑인 왕조 누비아를 정복해 후환을없앤 다음 룩소르를 신왕조의 수도로 정한 제18대 왕조의 토트모시스(Thot-Mosis)1세의 신전이 나온다.그의 딸 하셉수트(Hatshepsut)는 남편에게 잠시 왕 위를 승계시켰다가 남편이 죽자 왕위에 오른 서자(庶子)토트 모시스 3세를 22년이나 감금하고 장기집권을 했다.그녀가 죽자 감금에서 풀려난토트 모시스 3세는 그녀가 신전을 축조하고 새겨놓은 공적을 삭제하고 자신의 소아시아 출병기로 장식했다.인근에는 두 정적(政敵)이 각각 세운 오벨리스크가 아직도 대적하고 있다.
생전에 몹쓸 일을 많이 했던 그녀는 내세를 걱정하였던지 강건너 불모의 산 아래 죽음의 神을 영접하는 신전(Djeser Djeserui Dier el-Bahri)을 세웠다.산비탈을 깎아 층층이 지은 3천5백년전의 건물은 얼핏 보면 과천 정부청사를 연상할 만큼 현대적이다.
신전 안에는 그녀의 어린시절 기린이 있는 먼 남쪽나라를 방문한 행적과 가지가지 치적을 알리는 그림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계곡에는 역대 왕들의 석굴무덤이 산재해 있다.왕을 감금했던 하셉수트의 묘도,감금당했던 토트 모시스3세의 묘도 도굴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62개의 왕묘 가운데 관광객의 발걸음을 오래멈추게 하는 것은 방년 19세에 요절한 투탕카문(Tutankhamun)왕의 묘다.람세스 6세의 묘 밑에 있었던 탓에 도굴을면했던 것이 1922년 묘를 손질하던 영국인 카터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2백㎏이 넘는 황금의 관을 비롯한 수천점의 부장품이 현재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인근에 있는 왕비의 계곡엔 람세스 2세가 가장 아끼던 미녀 왕비 네페르타리(Nefertari)의 무덤을 비롯하여 왕비의 묘 4개가 있다.석굴 안에 그려져 있는 신비스러운 그림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는 동안 온종일 이글거리던 태양이 사 막의 지평으로 기울고 있었다.강건너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기가 에티오피아의 왕녀 아이다(Aida)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Radames)간의 애련의 현장입니다.1987년 베르디의 가극 아이다가 도밍고(Placido Domingo)와 차리아(Maria Charia)등 5천명의 가수.기 병대가 참가하는 가운데 열렸답니다.』 언젠가 아이다가 룩소르에서 다시 공연되면 꼭 오라면서 안내인은 나의 손을 잡고 여러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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