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 SK 표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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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에 대한 경영권 간여 의도를 보다 분명히 함에 따라 오는 12일 열릴 SK의 주총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만약 이번 주총에서 SK가 경영권 방어에 실패할 경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외국인 손으로 넘어가는 첫 사례가 된다. 특히 회사가 부도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SK는 경영권을 내놔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이에 따라 SK는 경영권 방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고 소버린 역시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소버린의 제임스 피터 대표는 최근 SK 노조 대표를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가 하면 공개적으로 소액주주들의 위임장을 전달받는 행사를 하며 치밀하게 주총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일부 소액주주들과 간담회를 연 소버린 측은 최태원 SK 회장의 퇴진을 거듭 촉구했다.

사정이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자 SK그룹도 7일 강도 높게 소버린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날 '소버린의 행보와 관련한 SK 입장'이라는 성명에서 "소버린의 경영권 장악 의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적대적인 인수.합병(M&A)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소액주주를 호도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또 "SK㈜의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것은 SK그룹을 분할 매각해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속셈"이라고 지적했다.

SK는 그동안 여러차례 소버린 측과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소버린 측은 지난해 6월 SK의 유정준 전무를 만난 이후 崔회장 등 대주주와의 대화를 일절 거부했다. 또 지난 1월 소버린의 사주인 챈들러 형제는 모나코에서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도 '崔회장의 퇴진'을 못박았다. SK의 고위 관계자는 "소버린이 '장기 투자자'란 가면을 벗은 만큼 정공법으로 주총 대결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SK와 소버린 간의 주총 의결권 확보 경쟁은 더욱 뜨거워졌다. SK는 崔회장 측 우호 지분 26.2%에 국내 기관투자가의 등을 업고 이번 주총을 치른다는 전략이다. 소버린은 이미 확보한 14.99%(자사주 제외한 의결권 기준으로는 15.1%) 이외에 외국인투자가와 소액주주를 끌어들여 이사진 장악을 벼르고 있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속속 SK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7일 현재까지 한국투신운용(0.47%).LG투신운용(0.13%).대한투신운용(0.96%).삼성투신운용(0.13%) 등 대부분의 국내 투신사는 SK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들에게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의사를 공시했다. 은행권에선 외환은행(1.28%)과 한미은행(0.004%)이 SK 지지를 표명했다.

반면 외국계인 슈로더투신운용(0.02%)은 소버린 지지 의사를 공시했다. 외국계 중 비중이 큰 편인 PCA투신운용(2.14%)은 SK와 소버린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들에 대해 모두 찬성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 경우 PCA투신운용의 지분은 표 대결 결과에 따라 배분된다. 이런 가운데 '큰 손'국민연금은 아직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3.6%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기금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표 대결 흐름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SK 측은 지난 3일, 소버린 측은 4일 각각 이 기금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했다.

◇소버린자산운용=소버린은 그동안 "기업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에 투자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장기투자자"라고 자신들의 투자 목적을 설명했다. 실제 소유주는 뉴질랜드 출신의 챈들러 형제다. 운용자산은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초 한국에 들어와 먼저 국민은행의 지분을 사들였다. 그러나 국민은행의 주가 상승이 어렵다고 판단해 바로 이를 매각한 뒤 SK 쪽에 투자했다.

지난해 3월 중순까지 주당 평균 9천원대에 14.99%의 지분을 사들였다. 벌써 세배 이상의 투자 수익을 올렸다. 투자기법이 정교한 것도 특징이다. 15%를 넘지 않게 투자한 것은 SK텔레콤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다. 15%가 넘으면 SK㈜가 외국인 회사로 분류돼 SK텔레콤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소버린이 SK㈜가 갖고 있는 SK텔레콤의 지분을 처분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윤희.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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