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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아쟁점과흐름>3.시민사회론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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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네 갈길을 가거라.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내버려두어라.』 이것은 이병천(강원대 경제학과)교수가 「민주주의의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창작과 비평』92년 봄호)에서 자신의 변화된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권두에 인용한 단테의 잠언이다.
90년대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 주요한 논의는 역시 「시민사회론」이다.80년대 서구에서 신보수주의의 등장과 사회주의 붕괴로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 시민사회론은 한국사회에서는 비판적 지식인 사이의 분열을 가속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서 구의 좌파가 대안으로 찾았던 것이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이었고,한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도 그람시적 문제의식을 수용하는과정에서 이루어졌다.그람시는 경제관계와 계급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민사회에서 지적.도덕 적 헤게모니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탈리아 혁명가이자 철학자.그람시에 대한 관심은 경제주의와 정치주의 대신 그람시 이론에 내재된 민주주의적 혹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재발견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그러나 이 논의는 「그람시에 기대어」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민주화의 지반 확장」에 활용할 것인가,아니면 그 이론의개량주의적 요소를 지적하면서 「그람시를 넘어서」 갈 것인가를 둘러싸고 이루어졌다.
반면 이병천 교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적 시민사회론으로 우리현실을 담아내려 시도했다.그는 91년부터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비판하면서 시민사회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논문을 발표했는데,핵심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마르크스주의적 비 판과 달리 접합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교수의 주장은 갓 싹튼 민중운동을 「시민적 개혁운동」으로 전환시키는 부르주아적 자유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가장 비판적이었던 서울대 김세균(정치학)교수는 이교수의 인식 변화가「과거 자신의 이론에 대한 아무런 자기비판」없이 기존의 비판적지식인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고 하여 그 도덕성을 문제삼기도 했다.역설적이게도 이교수처럼 80년대에 가장 교조적 이론을 제공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사회주의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교조적 이론에 대해 비판의 선봉에 섰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사회론이 비로소 확정돼 가고 있는 마당에 동구및 유럽,그리고 남미에서는 오히려 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확산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국가에 대한 반정립에서시작한 시민사회론이 실제로 공공의 영역을 확장 하기 보다 국가의 공적기능을 후퇴시켜 시민사회에서 이해관계의 충돌로 파행을 겪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파편화와 함께 시민사회가 자본에 의해빠르게 식민화하는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는 시민사회옹호론자들에게 남겨진 중대한 이 론적 과제라 할 수 있겠다.
金蒼浩 本紙전문기자.哲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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