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세계 지배하는 글로벌 네트워트 해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다중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지음
조정환 외 옮김, 세종서적, 510쪽, 2만5000원

2000년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제국』(이학사)의 후속작이다. 그 책에선 세계화의 물결이 휩쓸고 있는 21세기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제국’이란 개념이 제시됐다. ‘제국’은 영토적 지배를 궁극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19세기의 제국주의와 다르다.

또 냉전시대 미소 양대 강국이 지배력 확대를 놓고 경쟁하던 ‘제국주의 연장’과도 구분된다. 오늘날의 지구촌은 국경과 민족을 넘어 선진제국의 정치· 군산복합체들, IMF 등 국제기구, EU· WTO 등 다자동맹이 전 지구적 지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전작에서 정교한 논리전개를 통해 이를 지적하고 입증하려 했다.

이번 신작은 9·11 사태나 이라크 전 등 『제국』이후 벌어진 굵직한 사건까지 포함해 국제정치를 조망하는 한편 이런 상황을 잠재적 대안으로 제시했던 다중(Multitude)의 개념을 구체적이고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다중(多衆)’은 다중은 다양한 문화·인종·민족·삶의 방식의 차이를 포괄하는 다양체(multiplicity)를 말한다. 수많은 내적 차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통일의 관점에서 파악된 ‘민중’, 무차별성을 본질로 하는 ‘대중’과 다른 개념이다. 물론 산업노동자를 일컫는 노동계급과도 구별된다.

지은이들은 테러전쟁·종교분쟁·인종분규가 끊이지 않는 현 상태를 ‘전지구적 내전’이라 규정한다. 국민주권을 뛰어넘는 제국적 주권이 지배력 확보를 위해 벌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중’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을 찾는다. 제국이 네트워크화할수록 다중은 지구적 연대를 맺고, 더 창조적이고 자주적인 방식으로 저항해 민주주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 전망한다.

책은 현재 지구적 상황을 진단하는 1부 ‘전쟁’, 제국을 극복할 주체를 설명하는 2부 ‘다중’,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에 대한 제언을 담은 3부 ‘민주주의’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을 수 있지만 낯선 용어가 많고 이론적이어서 읽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 책을 ‘현대판 공산당 선언’이라 의미를 부여한 옮긴이도 책 말미의 ‘용어해설’부터 읽으라고 권할 정도다.

김성희 (고려대 초빙교수·언론학)(jaejae@korea.ac.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