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어디로 튈지 … 이어도는 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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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어민들이 죽은 뒤에나 가볼 수 있다는 ‘전설의 섬’ 이어도에 종합해양 과학기지가 3월로 준공 5년이 된다. 이제 이어도는 더 이상 전설도, 수중 암초도 아니었다.

이어도는 어민들의 이승의 안전을 지켜주는 등대로, 해난사고 때 구조 전진기기로, 태풍 진로 탐색의 전초기지로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 준공 5년을 맞아 이어도 종합해양기지를 가봤다.

22일 제주해양경찰 소속 러시아제 카모프 헬리콥터를 타고 1시간 정도 비행해 닿은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는 웅장한 해양 구조물이었다.

제주 마라도로부터 149㎞ 떨어진 수심 41m의 암초 위에 15층 높이의 철 구조물로 지어진 기지 곳곳은 5년의 세월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퍼런 물이 끼며 따개비가 지름 2m 정도의 철골 기둥 아랫 부분에 자리 잡았고, 허연 소금기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폭풍의 영향 실시간 방송=한반도에 상륙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태풍의 약 40%가 이어도를 통과한다. 이곳을 거쳐 육지에 상륙하는 데는 대략 10시간이 걸린다. 이어도 맨 꼭대기에는 방송용 카메라가 바다 상황을 24시간 실황 중계할 수 있도록 설치돼 있었다. 그 옆에는 파고와 풍속, 수온 등 해양 기후와 바다 상태를 손금 보듯 하는 측정장비 30여 종이 빼곡히 설치돼 있다. 기지뿐 아니라 모든 장비는 무인으로 운용되고 있다.

한반도를 강타해 수많은 피해를 끼쳤던 태풍 ‘매미’를 비롯해 수많은 태풍에 대한 관측정보가 여기서 제일 먼저 자동 수집돼 10분 간격으로 기상청 등 곳곳에 보내졌었다. 22일 이어도 주변에는 초속 7m의 바람이 불고 파고는 1.2m 정도로 비교적 잔잔했다.

청정 해역인 이어도 주변의 미세먼지 농도가 국내 다른 청정 해역 미세먼지 농도보다 두 배나 높다는 사실과, 그 먼지가 중국으로부터 날아온다는 것도 이곳에서 밝혀낸 성과였다. 중국 산둥반도에서 날아오는 먼지의 이동경로 추적에도 결정적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해양연구원 심재설 박사는 “한반도 최남단의 해양과 기후를 연구하는 데 최적지일 뿐만 아니라 한국 영해를 널리 알리는 데에도 일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지 건설의 책임자였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기 충당=이어도 기지에는 태양전지 18㎾, 풍력발전기 7.5㎾의 시설이 설치돼 있다. 긴급용으로 85㎾급 발전기 두 대도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기를 필요로 하는 시설이 늘면서 전력이 달리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하루 3t을 생산할 수 있는 해수 담수화설비도 새로 설치했다. 무인 기지지만 연구원과 기지 점검 기술진들이 정기적으로 와 머물 때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이전에는 빗물을 모아 화장실 용수로 사용했었다. 그러나 갈매기 변이 빗물 모으는 통에 섞여 들어 악취로 고생을 했다고 연구원들이 털어놨다.

◇가거초 기지 건설 위한 벤치마킹=이날 이어도 방문은 서해 가거초 해양과학기지 건설을 맡은 대우건설 이도희 상무를 비롯한 한국선급엔지니어링 김행락 이사 등이 동행했다. 가거초 기지는 내년 10월 완공이 목표다. 가거초는 가거도로부터 약 47㎞ 떨어진 곳에 있는 수중 암초다. 해수면 위 26m 높이로 역시 철골 구조물로 기지를 만들 예정이다.

이 상무 등 가거초 기지 건설팀은 이어도 기지에서 미비하거나 보강해야 할 사항을 꼼꼼히 살폈다.

한국해양연구원은 이어도 기지-가거초 기지-서해 중부에 떠 있는 부이-백령도 기지(계획 중)를 이은 황해 관측망을 완공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망이 구축되면 황해의 조류·해류·파랑·해상풍·수온·염분 등 각종 해양 정보가 자동으로 수집된다.

한국해양연구원 연안방재연구사업단장인 박광순 박사는 “서해 관측망이 구축되면 우리나라와 일본·중국·러시아가 참여하는 동북아 해양관측 시스템의 한 영역을 담당하게 된다”며 “각종 해난 사고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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