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예일대학간 "공산주의 연대기"시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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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공산권붕괴후에 비밀해제된 소련측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냉전체제아래서 왜곡됐던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속속 책으로 결실을 보고 있다.
미국 예일대학은 90년에 공개된 모스크바 소재 공산당 중앙당문서보관소의 비밀문서 수십만건을 면밀히 분석,18권짜리 『공산주의 연대기』(Annals of Communism)시리즈를 펴낸다고 발표하고 1차분으로 최근『미국 공산주의의 비밀세계』와 『몰로토프에게 보낸 스탈린의 편지:1925~1936』등 2권을내놓았다.7년후 완간 예정인 이 시리즈는 지난 수십년동안 선전선동.역정보.은폐.공모 등으로 왜곡된 세계사를 바로 잡기 위한것이다.이 책들은 스파이 스릴러 물과도 같은 학술서여서 일반 독자들에게도 쉽게 읽힌다.
『미국 공산주의의 비밀세계』는 러시아 역사학자 프리드리크 피르소프가 집필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공산주의 역사서로는 가장 객관성을 유지한 책으로 평가받는다.미국쪽에서는 에머리대학의 하비클레어와 의회도서관의 존 얼 헤인즈가 집필자로 참여했다.이 책에는 1920년대부터 1945년까지 작성된 모스크바 중앙당의 「극비」문건 수십만건 중에서 사료적 가치가 특히 높은 92건이그대로 실려 있다.
예일대학이 기획중인 시리즈에는 이 외에도 『1930년대 소비에트 정치와 탄압』『소련 강제노동수용소의 역사,1920~1989』『레닌의 비밀문서보관소』『로마노프가의 종말』등이 눈길을 끈다. 이번에 발표된 두권만으로도 많은 지식인들이 충격을 받기에충분하다.지금까지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미국 공산당만은 다른나라 공산주의운동과는 달리 리버럴리즘에 의한 자생적 조직이라는주장이 정설로 통했었다.그때문에 매카시선풍을 비 롯한 1940~50년대 미국의 반공주의도 공산주의의 위협을 부각시키기 위한미국정부측의 공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미국 공산주의의 비밀세계』에 실린 소련 비밀자료를 보면 미국 공산당이 철저히 소련공산당의 지령에 따라 움직였음을쉽게 알수 있다.미국공산당이 소련의 지배아래로 들어간 시기는 볼셰비키 혁명 2년후인 1919년으로 거슬러 올 라가며 그같은피지배의 행태는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지던 해까지 계속된다.이외에도 미국공산당은 소련을 위한 간첩활동을 하기 위해 지하조직망을광범위하게 구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책에 따르면 소련의 지원은 주로 금.은.보석등을 미국에 몰래 흘려보내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최초로 공작금을 받았던 사람중에는 좌익 저널리스트로 볼셰비키혁명에 관한 『세계를 뒤흔든10일』이라는 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존 리드도 포함돼 있다.한때 젊은 지식인의 우상으로 꼽혔던 리드에게 흘러들어간 돈은 자그마치 1백만달러.
옥시덴탈 석유회사의 회장을 지냈고 예술품 수집으로도 유명했던아먼드 해머도 소련 첩자로 드러났다.이 책에 실린 자료 2건을보면 해머와 그의 아버지 줄리우스는 코민테른의 비밀자금망으로 소련정부의 돈세탁 창구역할을 맡았다.이 책에서 는 또 처음으로미국내에 「브라더-선 네트워크」라 불리는 간첩망까지 구축되었던것으로 확인되고 있다.이 조직을 통해 미국공산당은 소련 비밀경찰의 전신인 NKVD와 접촉,미국 핵개발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침투해 핵비밀을 훔쳐냈다 .이 자료가 소련의 핵폭탄 제조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반공주의자로 불리는 조지프 매카시의 행동이정당화될 수 있는가.
미국행정부내에 소련첩자가 있었다는 점에서는 그의 주장이 맞지만 매카시선풍의 피해자는 늘 엉뚱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서는 잘못이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분석이다.다시말해 스탈린시대에 미국의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리버럴 이나 민주당원을 탄압할 때마다 소련첩자 운운하는 바람에 그같은 진실이 가려지고 말았다는 설명이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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