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아담&이브] 훔쳐보기 좋아하는 남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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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의 누드 사진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캐나다 출신의 ‘꽃미남’ 배우 에디슨 찬(陳冠希)이 기자회견에서 공개사과하고 은퇴를 밝혔지만 여진은 멈추지 않고 있다.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질리안 청(鐘欣桐)은 올림픽 개막식 공연 참가가 거부됐고, ‘파이란’의 세실리아 청(張柏芝)은 남편과 파경을 맞은 데 이어 광고계약, 영화 촬영이 취소될 위기라는 소식이다.

이 사건에 대해 한 네티즌의 의견이 눈길을 끈다. 사진을 찍은 것이 무슨 죄냐, 사진을 몰래 유포시킨 사람과 집단적으로 관음증 양상을 보인 네티즌이 문제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남의 은밀한 모습을 엿보고 싶어 하고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원시적 본능을 억누르고 감추는 방향으로 진화했는데, 남의 사생활을 엿보면서 억눌렸던 본능을 해방시킨다. 또 억눌린 사회에서는 이런 본능적 경험을 공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엿보기 심리는 영어로 피핑 톰(Peeping Tom)이라고 한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의 영주 레오프릭이 농민을 수탈하자 아내 고다이버가 세금을 줄여주라고 간청한다. 영주는 아내에게 발가벗고 말을 탄 채 마을을 돌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제안하고, 고다이버는 이 제안을 실행에 옮긴다. 농민들은 모두 창문에 커튼을 치고, 부인의 모습을 보지 않았지만, 양복점 직원 톰이 몰래 봤다. 참고로 벨기에의 유명한 초콜릿 이름도 이 ‘성스러운 부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엿보는 심리는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강하다. 남성은 뇌의 시각, 청각중추가 발달해 이런 감각에 흥분하는 반면 여성은 전두엽이 발달해 애정·분위기 등에 더 영향을 받는다. 미국의 여성지『비바』가 독자를 늘리려고 남성 누드사진을 실었지만, 독자조사 결과 여성들의 반응은 거의 없었다.

엿보는 행위도 쌓이면 중독증세가 되며 ‘관음도착증’(Voyeurism)에 해당한다. 의학적으로는 6개월 이상 남을 엿보고 싶거나 포르노를 보지 못해 안달이면 병으로 규정한다. 관음증 환자는 누군가를 엿보면서 자위하는 것을 즐기지만 정상적 관계는 되지 않는 ‘특이 발기부전’에 걸리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엿보는 행위를 중단해야 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원에서는 인지치료와 함께 우울증, 충동장애를 치료하는 약을 처방한다.

우리나라 정신과나 성의학 클리닉에는 이런 환자가 드물지 않다. 넘치고 넘치는 포르노 및 음란 채팅사이트는 ‘관음도착증 사회’와 동전의 앞뒤 관계가 아닐까?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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