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치기로 쿠바판 새마을운동 벌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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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으로 돈을 벌게 해준 쿠바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양잠을 생각해냈죠.”

카리브해의 공산국가 쿠바에서 누에 치고, 해삼 잡는 한국인 윤용갑(60·사진)씨. 네네카라는 업체의 고문인 윤씨는 10여 년간 쿠바 앞바다에서 매년 40-50t의 해삼을 잡아 말린 뒤 전량 중국으로 수출하면서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 그런 그가 2003년부터는 양잠이란 말조차 생소한 쿠바에서 누에고치를 키워 실을 뽑고 있다. 윤 고문은 “양잠업을 성공시켜 낙후된 쿠바 경제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던 윤씨가 쿠바와 첫 인연을 맺은 건 1997년. 평소 자신을 아껴주던 수산업자 최모씨의 부탁을 받으면서다. 중남미에서 새로운 수산물 생산기지를 찾던 최씨는 쿠바에 해삼 잡기 좋은 수심 1.5~7m의 얕은 바다가 넓게 퍼져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해삼 채취 사업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믿고 지내던 윤 고문에게 아들인 최지호 사장(36)과 함께 일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윤씨는 너무 다른 길이라 고민도 했지만 결국 쿠바로 건너와서 일에 뛰어들었다.

독점사업권 덕에 이들의 사업은 쑥쑥 커갔다. 윤 고문은 “현재 쿠바 5개 지역에서 150여 명의 현지인 잠수부가 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해삼 사업이 뿌리를 내리자 이들은 신규 사업을 찾아 나섰다. 윤 고문은 “최 사장과 논의한 끝에 이익도 내면서 기왕이면 쿠바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결론은 누에 치기였다”고 말했다. 쿠바의 기후·토양 등이 누에 치기와 뽕나무 재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마침 쿠바 국립 ‘인디오 아투 웨이 농업연구소’에서 사료용으로 뽕나무를 들여와 시험재배중이란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 쿠바 당국에 양잠업의 잠재력을 설명한 끝에 협조를 얻어냈다.

이호수 전 강원대 교수와 손기욱 박사 등 한국인이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의 양잠·양봉 담당 국장을 잇달아 맡으면서 큰 도움을 줬다. 이들은 누에 알을 구해주는 등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윤 고문은 “한국서 들여온 누에를 현지산과 교배해 계속 품종 개량을 하고 있다”며 “내년이면 1.5~2t의 누에고치를 생산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뽕나무 밭 재배 면적도 크게 넓힐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양잠은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한국에서 50만 가구가 종사했던 업종으로 인건비만 비싸지 않으면 전망이 상당히 밝다”며 “반드시 성공해 쿠바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바나(쿠바)=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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