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요시히토(嘉仁) 일본 왕세자(훗날 다이쇼 일왕)의 서울 방문을 앞두고 숭례문의 좌우 성곽이 헐렸다. 비좁은 숭례문 주변을 정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제론 대한제국 황실의 권위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였다. 대한민국의 국보 1호이자 600년 넘게 지켜져 온 숭례문이 한 사람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전소됐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것이나 진배없다.
“숭례문 화재 소식은 전 세계인을 놀래키고 있다” “재계약을 완료한 한화 구단이 야구계를 두 번 놀래키고 있다” “정명훈의 카리스마, 브람스를 놀래키다”처럼 흔히 쓰는 ‘놀래키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놀래다’의 충청 지역 사투리(방언)다.
‘놀래다’는 ‘놀라다’의 사동형으로 ‘놀라게 하다’의 뜻이다. ‘~를(을) 놀래다’와 같이 목적어가 수반된다. “그들이 그에게 총격을 가해 온 것은 그를 놀래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바로 그를 죽이기 위한 목적이었다”(홍성원 『육이오』) “북한 핵실험, 세계를 놀래다”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그를 놀래 주자”처럼 쓸 수 있다.
‘놀래키다’가 쓰인 문장에서 ‘놀래키다’를 단순히 ‘놀래다’로만 바꾸면 어색함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땐 문맥에 따라 ‘놀래 주다, 놀라게 하다’ 등으로 바꿔 쓰면 훨씬 자연스럽다. 놀란 주체가 주어면 ‘놀라다’를 써야 하고, 주어가 놀라게 한 행위자라면 ‘놀래다’를 쓴다고 보면 된다.
권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