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자동차 행정은 이를 따르지 못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관련 규제가 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런 규제를 놓고 ‘또 다른 무역장벽’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앞차와의 거리를 자동으로 유지해 주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이다. 이것도 뒤늦게 허용됐다. 정보통신부가 2006년 8월에야 차량 충돌 방지용 소출력 무선기기 사용을 허가한 것이다. 또 5년 전만 해도 ‘제논 라이트’가 장착된 수입차는 통관이 되지 않았다. 기존 헤드라이트에 비해 더 밝은 빛을 내 안전운전에 도움을 주지만 건설교통부의 자동차관리법 안전규정에 들어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이 안전규정에 포함된 것은 3년 전 현대의 그랜저XG에 장착되면서다.
정부는 무선 통신을 사용하는 ‘타이어 공기압 감지장치(TPMS)’와 차량용 무선 열쇠에 대한 주파수 규정도 최근 완화했다.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해 여전히 주파수 대역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파수 출력 기준을 맞추지 못해 아직도 들여오지 못하는 수입차의 첨단 기술도 있다. 리모컨으로 600m 밖에서 차 실내를 예열할 수 있는 폴크스바겐의 ‘보조히터 시스템’도 그런 예다. 벤츠도 열쇠를 지니고 있으면 문을 열고 잠그는 ‘키리스 고(Keyless Go)’시스템의 주파수 범위가 맞지 않아 국내에 들여오지 못하고 있다.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편법도 동원된다. 규정에 걸리는 장치의 선을 끊고 통관검사를 받은 뒤 다시 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수입차 딜러들은 말한다.
칼 요한 하그만 주한 유럽연합(EU)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 정부는 한국 자동차 업체가 개발하지 못한 기술은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며 “운전자의 안전에 중점을 둬서 판단해야 할 사항들을 국내 산업 보호라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 관계자는 “안전 기준은 자동차 업체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건의하면 1년 정도의 검토 기간을 거친 뒤 바꾼다”며 “수입차 업체들이 AFS 등의 기준 개정을 건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 기준을 국제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며 국내차와 수입차를 구분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대림대학 김필수 교수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빨리 고쳐야 기술 개발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우·박현영·한애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