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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따라삼천리>2.평창에서 태백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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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평창~영월~태백~봉화(약1백47㎞)에 이르는 31번 국도상의영월은 칼같은 산들이 얽히고 설킨 사이로 비단결같은 냇물이 맑고 잔잔하게 흘러 예부터 이웃 평창.정선과 함께 「산다 삼읍 영평정(山多 三邑 寧平旌)」으로 불렸다.
「충절의 고장」 영월은 수양대군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당한 단종이 귀양살이 2년만에 사약을 받고 승하했던 곳.방랑시인 김삿갓의 묘와 함께 역사의 진한 향기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단종이 태백산에 들어가 태백산신으로,금성대군은 소백산에들어가 그곳의 산신이 됐다」고 믿는 영월사람들은 마을마다 단종각을 세워 음력 정월 대보름에 제례를 올린다.그런가 하면 매년한식을 전후해 장릉에서는 단종제를 거행한다.
그러나 이것도 영월 호장(戶長)엄흥도(嚴興道)가 아니었다면 단종의 시신은 흔적없이 사라졌을 것이고 지금의 장릉도 존재하지않았을 것이다.
영월문화원 향토연구소장 엄흥용(嚴興鏞.41.석정여고 교사)씨는 『단종이 승하한 후 시신에 손을 대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한다는 왕명이 떨어져 누구도 엄두를 못냈지요.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동.서강이 합치는 합수머리에서 단종의 시 신을 찾아낸엄흥도는 모친을 위해 준비한 삼베로 시신을 염한 뒤 관에 넣어지게에 둘러메고 영월 엄씨의 선산인 동을지산(冬乙支山)으로 발길을 돌렸어요.눈길을 걷다 잠시 쉰 엄흥도는 산속으로 더 들어가려 했지만 지게가 움직이지 않자 시간이 없어 그 자리에 암장했지요.그 곳이 지금의 단종릉입니다』라고 밝혔다.
숙종때 장릉으로 승격돼 영월 엄씨의 묘는 다른 곳으로 이장됐다. 그래서인지 조선조 다른 왕들의 능은 평지에 있는데 반해 단종의 능은 언덕 위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런가 하면 영월읍영흥리 금강공원안의「월기(越妓)경춘순절비(瓊春殉節碑)」에는 춘향전과 같은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영조 45년(1772년) 영월기생 경춘은 당시 부사였던 이만회의 아들 이시랑과 사랑에 빠졌다.그러나 후임 관원이 수청들 것을 재촉하니 견디다 못한 경춘은 동강에 투신자살한다.이때 나이가 16세였다.
23년이 지난 정조 19년(1795년) 강원도 순찰사 이찬암(李巽菴)은 영월을 지나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비문을 세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영월읍에서 약 26㎞ 떨어진 영월군하동면와석리에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묘가 있다.강원 영월군.충북 단양군.경북 봉화군등 3개도의 접경지대인 이곳은 정감록에 평생 난(亂)을 겪지 않는 전국 10승지중 하나로 꼽힌다.그럴정도로 이곳은 고씨동굴이 관광지로 각광받기 전까지만 해도 영월군의 오지였다.
삿갓묘 바로 위쪽에 살고 있는 마을 주민 김귀권(金貴權.70)할머니는 『10년전에야 겨우 전기가 들어왔고 차를 타려면 1시간30분정도 걸어야 하는 산간벽지였다』고 말했다.
이밖에 영월군에는 읍내에서 10분거리에 단종의 처음 유배지였던 청령포(淸浦.남면광천리),20분거리에 고씨동굴(하동면진별리),단종이 승하하자 시중들던 궁비.궁녀.무녀등 6명이 투신해 순절한 낙화암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어라연(於 羅淵.영월읍거운리)이 각각 10분과 2시간거리에 있다.
영월에서 석항~녹전~상동~태백을 거쳐 봉화로 이어지는 길은 아득히 먼 이국(異國)의 여로를 달리는 기분을 맛보게 한다.영월에서 하천을 끼고 약 18㎞를 달리면 석항에 닿고 다시 10㎞를 지나면 녹전인데 이 부근의 송림이 매우 인상 적이다.
상동에서 9.5㎞를 달리면 화방재(9백50m)에 이른다.4월말까지 산아래는 비가 와도 이곳은 눈이 올 정도.정상에서 1㎞정도 내려가면 태백산국립공원이다.
경북봉화군으로 넘어가는 넛재(8백96m)에는 청옥산 자연휴양림이 있다.넛재를 지나 약 15㎞를 내려오면 왼편으로 계곡미의극치를 이룬다는 불영계곡을 거쳐 울진으로 이어진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접경지대인 50여리 길은 한국의 오지답게급커브와 내리막길의 연속.험하기는 하지만 지나는 차들이 적어 멋과 낭만의 드라이브 코스로 도전해볼 만하다.
[寧越=金世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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