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식회사 대장정] 5. 가전-하이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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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하이얼로에 소재한 하이얼 본사 마당엔 잔디로 꾸며놓은 세계지도가 있다. 5대양을 표시하는 호수도 만들었고, 6대주도 그려져 있다. 하이얼이 해외기지를 설립해 놓은 곳엔 깃발이 꽂혀 있다. '세계화가 살 길'이란 하이얼다운 조형물이다. 하이얼은 공장 내부 사진을 못 찍게 했다. [칭다오=김형수 기자]

하이얼은 중국에서 '최고 기업'대접을 받는다. 하이얼은 매출액(711억위안.2002년) 기준 중국 500대 기업 중 16위다. 상위 15개사는 모두 국영기업인 데다 석유.화학.철강 등 기간산업과 은행.보험 등 금융업종이다. 민간 기업으론 하이얼이 중국 최대다. 냉장고.세탁기 등 백색가전 분야에선 세계 최대며, 컴퓨터.휴대전화 등을 포함한 전체 가전에선 세계 5위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장루이민(張瑞敏) 그룹 회장이 최고경영자로 처음 취임했던 1984년에 비해 무려 2만7000배나 뛸 정도로 고속 성장했다.

지난달 9일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의 본사에서 만난 우커쑹(武克松.54) 그룹 부회장은 "한국 업체들도 하이얼의 경쟁력이 너무 강해 협력하기 힘들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할 생각이 있고 한국 업체와 협력하는 문제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들이 이렇게 나와 난감하다고 했다. "세계 최대의 백색가전 업체가 된 데는 저가(低價)전략 덕분이 큰 것 아닌가"라는 물음엔 "중국에도 여러 한국 업체가 진출해 있으나 하이얼 제품이 더 비싸게, 많이 팔린다"고 응수했다.

◇중국 기업 세계화의 선봉장=하이얼의 고속성장은 張회장의 '선난(先難)후이(後易)'라는 경영철학에 기인한 바 크다. '뚫기 어려운 선진국 시장을 먼저 공략한 뒤 후진국으로 간다'는 뜻이다. 다른 중국 기업들이 뚫기 쉬운 동남아로 진출할 때인 99년 張회장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3000만달러를 투자해 냉장고 공장을 건설했다. 웬만한 기술력으론 엄두도 못 내는 선진국 시장에서 '세계화'를 시작한 것이다.

제품 구성도 이에 맞췄다. 당시 실력으론 대형 냉장고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과 경쟁하기 힘들다고 판단, 일종의 틈새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소형 제품에 우선 손댔다. 그 뒤 점차 대형 제품으로 분야를 넓혀 갔다. 이런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이얼 미국공장 제품이 미국 소형냉장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다. 전체 냉장고시장으로 따져도 점유율이 20%다. 국내 시장 공략도 같은 논리였다. 세계 유명 상품이 집결하는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광저우(廣州) 등 3대 거점부터 먼저 공략한 뒤 중국 전역으로 시장을 넓혀 갔다.

하이얼은 미국과 우즈베키스탄에 해외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여기엔 디자인.물류센터 등도 같이 있다. 철저히 현지화하자는 뜻이다.

하이얼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張회장은 해외 생산기지를 더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張회장은 "세계 1위 가전업체가 우리 목표"라며 "미 GE가 우리 경쟁 상대"라고 강조한다. 이런 경영철학엔 張회장의 민족주의적인 '이리론'이 배경이 되고 있다. 그는 외국 기업을 이리로 본다. "이리와 맞서려면 우리도 이리가 돼야 한다"고 한다. 세계 기업들이 중국에 몰려오는 것처럼 자신들도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철저한 능력주의 인사=하이얼 본사 전시장엔 제품마다 개발자인 직원의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다. 武부회장은 "연구.개발 직원은 각자가 하나의 기업체"라고 밝혔다.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회사는 언제든지 독자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인력이 필요하다면 누구든 차출해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공하면 회사 지원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직원의 몫이다. 武부회장은 "그러나 실패하면 철저히 책임을 묻는다"고 말했다.

또 '많이 일한 사람은 많이 받고, 적게 일한 사람은 적게 받으며, 일하지 않은 사람은 받지 못한다(多勞多得, 少勞少得, 不勞不得)'는 게 하이얼의 보상원칙이다. 따라서 고정급 성격의 기본급은 연봉의 30%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성과에 따라 지급된다. 주어진 목표를 80% 이상 못 채우면 최저생계비 수준밖에 안 준다.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임금 지급 방식이다. 하이얼에선 중국의 이른바 '철밥통'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특별취재팀=김영욱 전문기자(팀장), 김형수.최형규.김경빈 기자 .친훙샹 중국 베이징대 교수,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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