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자치단체장은 일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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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역대 서울시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5개월이다.그만큼 말많고,그만큼 어려운 자리다.이 어렵고 힘든 자리가 한번 당선되면 4년을 보장하는 민선시장으로 바뀐다.
다른 광역. 기초자치단체장도 마찬가지다.잘못 뽑으면 되물릴 수도,어디에 항변 할 곳도 없다.실생활과 직결된 우리 일꾼을 뽑기 위해 보다 냉철하고 현명하게 어떤 자치단체장을 뽑아야 할지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단체장 자질의 첫째 조건은 진부하지만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몸과 말과 글, 그리고 판단이 똑발라야한 다는 왕조시대의 관료 선발 기준은 지금도 유효하다.
말과 글이 따로 노는 2중 인격자는 곤란하다.야성적 집념과 강한 실천력,이성적 판단과 현실적 균형감각,그리고 경영 마인드를 갖춘 명실상부한 주민의 일꾼이 단체장의 첫번째 모범 답안 이다. 단체장 자질 두번째.눈만 높고 실천력 없는 안고수저(眼高手低)의 인물이 아니라「안고수고」(眼高手高)의 인물이어야 한다.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朴文秀)가 영조대왕의 강권으로 한성부(漢城府)판윤(判尹)이 되었다.민생현안에 누구보다 밝은 그가 지금의 서울시장으로 벌인 첫 사업이 청계천 준설공사였다.장마가 되면 토사가 밀려 개천이 넘치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악취가 풍기는 청계천을 준설하지 않고선 민생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인구 17만명이었던 당시가 이러할진대 1천1백만명이 사는 오늘 서울의 당면 문제는 어떠한가.한 여론조사기관이 민선시장의 해결 과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교통문제가 54.6%로 가장 높았고,그다음 대기오염(9.7%).쓰레기 처리(8. 9%).주택공급(6.6%)순으로 대답했다.교통환경.쓰레기.주택등 어찌보면고소대처(高所大處)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정치가로선 접근조차 힘들고 좁쌀처럼 미세한 일들이다.미세한 일인만큼 전문성과 행정력이 어느때 없이 필요한 시정(市政)이 다.
연구실이나 산속에 은거해야 할 학자.도학자들이 도저히 해결할수 없는 저자거리의 잡사(雜事)들이다.그러나 연일 보도되는 공천자나 후보감을 보면 그 그릇이 너무 크다.좁쌀처럼 작은 일에만족할 수도,적합하지도 않은 거물들이 상당수 모여들고 있다.
그래서 서울시장을 포함한 단체장의 세번째 자질은 장삼이사(張三李四)이어야 한다.누구라면 다 아는 거물 정치인,세상을 뜨르르하게 호령하는 실력자가 아니라 그저 묵묵히 일할 전문성과 실천력을 갖춘 보통사람이어야 한다.높은 자리에 앉아 호령하고 지시만 하는 지역행정 책임자를 바라는 주민은 없다.막힌 곳은 뚫고 좁은 곳은 넓혀가는 지혜와 주민 서비스에 주력하는 일꾼을 기다리고 있다.
단체장,특히 서울시장의 자질을 다른 말로 강조하면 삼탈삼불(三脫三不)이 된다.탈정치(脫政治).탈정당(脫政黨).탈거물(脫巨物)이어야 한다.
거물 정치인이 야당이면 중앙정부와 마찰이 일고 여당 정치인이라도 청와대로 가는 길만 생각하기 쉽다.그런데도 정당들은 거물영입에만 혈안이 되고 있는 걸 보면 시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시민의 기대를 헤아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삼불(三不)이란 세가지가 불일치하는 인물이다.이런 인물은 시장될 자격이 조금도 없는 기피인물이다.첫째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는 사람이다.말만 번지르르하고 당선만 되면 오리발을 내미는,선거때면 으레 등장하는 언행(言行)불일치 인물이 기피인물 1호다.생각은 높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물.중국식 표현으로 이데올로기는 홍(紅)이고 기술은 전(專)이다.
이데올로기에는 훤하지만 현실문제를 푸는 전문기술.일꾼으로서의자질은 형편없는 과대평가된 인물,홍전(紅專)불일치 인물이 두번째 기피대상이다.세번째,정치적 야망은 끝없이 높지만 경영마인드는 전무한 인물이 과연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재 정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이런 정경(政經)불일치 인물 또한 제외돼야 마땅한 사람이다.
순간의 선택이 한 지역의 평생 운명을 좌우한다는 높은 경각심으로 진정한 일꾼을 물색하고 선출하는 현명한 지혜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기본이고 시작임을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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