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림 … 동화책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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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며 엄마를 위협하는 호랑이를 밝고 친근한 이미지로 그려넣은 『해님달님』<上>. 말 똥구멍에 손을 집어넣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그린『여우누이』<中>와 호랑이 배 속살을 잘라먹는 장면이 묘사된 『호랑이 뱃속 잔치』<下>.

“그림책의 노골적이고 엽기적인 그림이 아이들의 정서를 해치고 있다.”

동화작가 채인선(46)씨가 25일 발간된 계간지 ‘창비 어린이’ 2008년 봄호에서 제기한 주장이다. 『내 짝꿍 최영대』『아름다운 가치사전』 등의 저자인 채씨는 『해님달님』(국민서관), 『여우누이』(사계절), 『호랑이 뱃속 잔치』(사계절) 등을 예로 들며 그림책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짚었다.

#너무 ‘예쁜’ 악인

오누이가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옛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든 『해님달님』의 경우, 호랑이를 예쁘게 그려낸 ‘장식성’이 문제로 꼽혔다. 책 내용 속 호랑이의 역할은 엄연히 ‘악(惡)’. 아이들에게 줄 떡을 다 빼앗아 먹고, 그것을 내준 어머니까지 잡아먹은 뒤, 그것으로도 배가 차지 않아 집으로 달려가 두 아이까지 잡아먹으려는 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 책은 표지그림에서부터 떡 그릇을 머리에 인 채 사뿐사뿐 걷고 있는 ‘예쁜’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 채씨는 “개성있고 세련된 그림을 향한 작가들의 욕심이 ‘이유없는 미화’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여우누이』의 표지 그림 역시 이야기 내용과 걸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여우가 사특한 간교를 부려 죄 없는 한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나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이야기인데도, 책 표지의 주인공은 깜찍발랄한 여자아이의 모습이다.

채씨는 “전래동화의 주제는 권선징악과 인과응보인데, 아이들이 예쁜 그림에 매혹돼 그 진실을 놓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이다움 잃은 엽기 묘사

적나라하고 엽기적인 그림과 묘사는 더 심각한 문제다. 『여우누이』에는 여우누이가 말의 똥구멍에 손을 쑥 집어넣는 그림이 나온다. 그 옆에는 “말 똥구멍에 손을 쑤욱 넣어 간을 꺼내 간장에 콕콕 찍어 먹었어”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이에 대해 채씨는 “글 만으로도 괴이하고 잔혹한 느낌이 드는데 그림은 성적 암시까지 더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또 『호랑이 뱃속 잔치』에는 호랑이 배 속에서 만난 숯장수·소금장수·대장장이가 호랑이 배 속살을 온갖 동물 모양으로 잘라내 구워먹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채씨는 “이 내용을 이야기로만 들었을 때는 허허 웃으며 ‘허풍떠는 얘기 잘 들었다’하고 일어서면 그만이지만, 이를 형상화시켜 그림으로 표현해 놓으면 이야기가 과장담을 넘어 엽기담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채씨는 또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이야기는 원래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라며 “이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예를 들어 『빨간 모자』의 경우, 샤를 페로의 원전에는 주인공 소녀 ‘빨간 모자’가 늑대의 침대로 끌려들어가 잡아먹히는 장면에서 끝나지만 한 세기 뒤 그림형제가 어린이용으로 각색한 책에는 사냥꾼이 늑대를 죽이고 소녀를 구해내는 것으로 결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채씨는 “최근 ‘원전’을 무조건 선호하는 풍토가 퍼지면서 아이들에게 엽기적인 장면을 여과없이 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어른 눈에 유치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 어린이용 그림책이 ‘아이다움’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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