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어젠다 7 ⑤ 공약은 제로베이스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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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낮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에 들어온 이명박 대통령의 첫 공식업무는 국회에 보낼 ‘한승수 국무총리 임명동의 요청서’에 서명하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에서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가져온 요청서에 사인하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열린 첫 국정운영 합동 워크숍에서 “인기영합적 정책만 편다면 나라를 선진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선 생각·정책·전략은 (정책이 나온) 그때에는 지지를 못 받을 수 있는 만큼 인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나라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면 국민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국민이 반대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면 밀어붙이겠다는 뜻도 된다.

압도적인 지지로 취임한 대통령일수록 공약에 더 집착하게 된다. ‘모든 공약을 모든 국민이 지지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공약은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 그러나 공약은 속성상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표를 얻기 위해 내놓은 공약이 모두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약속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에 얽매여 무리한 공약에 연연하면 부작용이 심해질 수 있다. 그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간다. 공약을 걸러야 하는 이유다.

강원도 양양 국제공항은 지난해 하루 평균 이용객이 100명도 안 됐다. 2002년 4월 개항 후 지금까지 누적 적자만 400억원이 넘는다. 이 공항의 건립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었다. 강원권에 국제공항이 필요하다는 지역 안배 차원에서였다. 그러나 연계 교통편이 부족했다. 관광자원도 빈약했다. 이런 이유로 건설교통부는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양양공항이 완공됐을 때 그는 뿌듯했겠지만 국민에겐 재앙이었다. 매년 생기는 수백억원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적자투성이인 무안·청주 등 주요 지방공항도 이런 식으로 태어나 국민에게 큰 짐이 된다.

노무현 정부도 공약했던 지역 균형발전에 목을 맸다. 수도권의 기업과 사람을 뽑아 지방의 혁신도시·기업도시로 보내겠다며 전국을 공사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균형발전은 지지부진했고 부동산 가격만 끌어올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무현 정부 5년간 토지수용을 위해 뿌린 돈만 98조원이다. 이 중 상당액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 집값을 끌어올렸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결과적으로 집 없는 서민의 가슴에 못을 박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에서도 논란거리가 많다. 핵심인 ‘연 평균 7% 성장, 60만 개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한국경제학회장인 이종원 성균관대 교수는 “대외 여건이 좋지 않아 연 7% 성장은 무리”라며 “숫자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운하 건설에 대해서는 반대여론이 만만찮다. 그런데도 대통령 측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다.

공약끼리 충돌하기도 한다. 복지 지출을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예산을 줄이고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출산·교육·노후생활 등 생애 주기별로 보건·복지 혜택을 주겠다는 ‘생애 디딤돌 7개 프로젝트’ 사업을 위해 연간 1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예산을 연간 10%(20조원) 줄이고 세금도 덜 걷겠다니 어디에서 돈을 마련할지 알 수 없다.

잦은 파업과 높은 실업률이라는 ‘영국병’을 고친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11년이나 집권했다. 하지만 대처도 막판에 신념에 집착했다. 그는 지방정부의 방만한 운영을 바로잡기 위해 90년 봄에 집과 재산이 있는 사람만 내던 지방세를 없애고, 모든 주민이 내야 하는 인두세(poll tax)를 도입했다. 이런 세금정책에 가난한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대처는 물러서지 않았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차를 뒤엎고 불을 지르는 시위까지 벌어지면서 혼란이 심해졌다. 결국 영국 보수당은 90년 11월 총재 선거를 통해 대처를 물러나게 했다. 홍기택 중앙대 교수는 “실천 가능한 공약을 중심으로 새로 틀을 짜면 국민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종윤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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