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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독선·독주 아닌 ‘독창의 대통령’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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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각하라고 부를 때나 님자를 붙일 때나 대통령의 자리는 외롭다. 높은 산정에는 두 사람이 설 만한 자리조차 없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는 말 앞에는 언제나 홀로 독(獨)자가 따라다녔다. 산업화의 시대에는 독재(獨裁)의 독이요, 민주화 시대에는 독선(獨善)의 독자였다.

선진화 시대를 선언한 새 대통령의 앞에는 과연 어떤 ‘독’자가 붙게 될 것인가. 쉽게 떠오르는 것은 독주(獨走)와 독창(獨創)일 것이다. 선진화의 푯대를 향해 열심히 뛰다 보면 낙오자가 생기고 실용의 이(利)를 추구하다 보면 의로운 자들이 뒷전에 밀릴 수도 있다. 더구나 경쟁원리에 익숙지 않았던 우리는 어렸을 때 달음박질을 하다 뒤지면 “앞서 가는 놈은 도둑”이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을 못 참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자조의 말을 들어 왔다. 그러기에 원리가 아닌 실용을 택한 현실적인 지도자라면 발목을 잡는 자들에 의해 넘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달려야 한다.

하지만 천천히 달리다가는 후진대열에도 끼이기 힘들어진다. 서둘러야 한다. 지금 글로벌 무대 위에서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던 K1, 프라이드와 같은 이종격투기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인도적인 몇 개의 치명적 반칙만 규제하고 모든 룰을 철폐하고 자유롭게 싸우는 것이 이종격투기 아닌가. 왜 우리가 규제를 철폐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유저(user)들이 만드는 인터넷의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위키’는 하와이 말로 ‘빨리 빨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잃어버린 십년을 되찾기 위해서도 빠른 속도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부가 독주하지 않고 국민의 동행자가 되려면 시저 이후의 난국을 통치하는 데 성공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 “천천히 서둘러라”는 격언을 명심해야 한다. 촛불 데모와 대구지하철 방화에서 시작해 숭례문과 정부 중앙청사 화재로 막을 닫은 노무현 대통령이 불이었다면 청계천 복원과 대운하 기획으로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은 물이다.

취임식 날에도 눈이 내렸다. 기득권을 불태운 불의 이미지가 혁파하는 것이라면 선진화의 경제 살리기는 마른 나무에 꽃 피우는 물의 창조적 이미지이다. 태울 것이 없으면 불은 사그라지지만 물은 흘려보낼 것이 없어도 지하에 스며든다. 독주에서 벗어나 독창의 대통령이 되려면 청계천 물에 ‘결’자 한 자를 더하여 ‘새 물결’과 ‘새 숨결’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유산층과 무산층을 불붙이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창조층(creative class)으로 바꿔주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실용주의를 펴는 방법일 것이다.

독재도 독선도 그리고 독주도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대통령에게는 독창의 ‘독’자가 붙기를 모든 국민들이 소망하고 있을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이화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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