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킬리만자로의 표범’ 만든 김희갑·양인자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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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일 오후 인천광역시 남구 아암5길에 있는 경인방송 ‘써니 FM’ 라디오 스튜디오. 작곡·작사가 콤비인 김희갑(72·사진·右)·양인자(63) 부부가 ‘조용필 데뷔 40주년 특집방송’에 출연했다. 이들의 출연은 지난달 1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21일간 편성된 특집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이들은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큐’ ‘바람이 전하는 말’ 등 히트곡을 조용필에게 안겨줬다. 특히 8집 앨범(1985년말 발매)의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그 겨울의 찻집’은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명곡으로 꼽힌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묵직한 무게감을 갖는 이들이지만, 이날 방송에서 양씨는 특유의 소녀적인 감성으로, 김씨는 구수한 입담으로 청취자들에게 재미를 안겨줬다.

방송이 끝난 뒤 만난 자리에서 이들은 조용필 8집에 대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조용필과 함께 꽃을 피운 것 같다”고 평가했다. 조용필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노래를 하고 싶다”며 김씨에게 코냑 한 병을 사들고 와서 곡 작업을 부탁한 것이 8집 앨범의 시작이었다. 이들 콤비가 가장 애착을 갖는 곡은 ‘킬리만자로의 표범’.

“새로운 장르의 노래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죠. 영화배우 최민수씨는 눈 내리는 대관령을 차로 넘다가, 이 노래를 듣고 차를 세운 뒤 내게 전화를 했어요. 노래가 자신의 얘기 같아서 감동을 받았다더군요.”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대중가요 중 가장 가사가 길다. 바다처럼 광활하게 펼쳐지는 멜로디에 맞게 기승전결이 있는 가사를 써보자는 게 양씨의 의도였다.

“독백 형식의 가사를 읊는데 용필씨가 많이 쑥스러워해서 당시에는 썩 흡족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들어보니 소박한 인간미가 느껴져 마음에 들어요. ‘킬리만자로의 표범’에는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녹아있죠.”

가사는 20년간 숱한 좌절을 겪었던 양씨 본인의 아픔을 담았다. 신춘문예에 수도 없이 떨어지면서 느꼈던 좌절과 그것을 딛고 일어나려는 의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가사를 쓰며 제 스스로 위로를 받았어요.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가사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저 너머에 있는 희망을 보자는 뜻이었죠.”

‘그 겨울의 찻집’이 공연장에서나, 노래방에서나 가장 많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다.

“‘아름다운 죄’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기 때문이겠죠. 그런 시적인 가사는 해석하려 하면 주접이 되고 말죠.(웃음) 듣는 사람이 느끼는 겁니다.”

김씨는 기회가 되면 블루스가 가미된 노래를 조용필에게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스케일과 색깔 있는 노래로 조용필 음악의 빈 자리를 메워주고 싶다”는 것이다. 양씨에게도 의사를 물었더니 김씨가 대신 답했다.

“이 사람은 조용필 노래 가사를 쓸 때 자세부터 달라요. 책상에 바짝 달라붙죠.(웃음) 언제든 불러주기만 기다리고 있죠.”

수줍게 웃던 양씨가 조용필을 처음 만났던 때를 문득 떠올렸다. “80년대 초반 용필씨가 한창 잘나가던 때였죠. 방송국 녹화장에서 지각한 멤버에게 정색을 하며 ‘우리 가는(추락하는) 거 잠깐이야’라고 꾸짖더군요. 그 마음을 지금도 지켜오고 있는 게 존경스러워요. 요즘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르는 걸 보면 갈수록 무르익더군요. 마치 자신의 심장을 내보이는 것 같아요.”

글·사진=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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