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親盧·反盧 게임 땐 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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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전날 지역구인 대구에서 상경한 열린우리당 이강철 영입단장이 정동영 의장을 찾았다.

"鄭의장, 대통령에게 얘기를 넣어야겠어요." 요지는 '대통령의 입당 시기를 총선 이후로 미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당내에서 그런 주장은 많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총대를 메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최측근인 李단장이 나선 것이다.

특히 李단장은 참여정부 장.차관들과 청와대 비서진의 총선 총출동을 주도했고, 대통령과 만나기만 하면 "빨리 입당해 힘 좀 실어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鄭의장은 이렇게 반응했다.

"부담도 덜어드리고, 그게 좋겠죠…. 李선배가 좀 나서 주시죠."

여권이 4월 총선 최대 이벤트로 잡아놨던 '대통령 총선 전 입당 카드'가 원점에서 재검토되기 시작했다. 당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렀을 때도, 30%대로 올라섰을 때도 총선 승리의 전환점으로 확신했던 부분이다. 그랬던 여권이 먼저 대통령에게 '총선 후 입당'을 건의하겠다는 것이다.

당내에서 이런 기류는 지난달 24일 盧대통령이 방송기자클럽 초청 회견을 한 직후 형성되기 시작했다. 선거 개입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다.

여기엔 두 가지 계산법이 작용했다. 우선 야당이 의도적으로 盧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면서 총선에서 '친노(親盧) 대 반노(反盧)' 구도를 모색하고 있다는 게 여권의 인식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총선 전 입당은 야당의 이런 의도가 실현되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판단이다. 급기야 잘 짜여 있던 '열린우리당 대 한나라당'의 양강 구도가 무너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안영근 의원은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선 입당해야지만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지금과 같은 소모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총선 후 입당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임종석 의원도 "이미 국민은 盧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여당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지 않느냐. 이 점에서 총선 전 입당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역할 분담론이다. 정동영 의장은 최근 "선거는 당이 책임지고, 대통령은 민생과 국정 안정을 챙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표명해 왔다. 정장선 의원은 "이제 열린우리당이 지지도 1당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대통령은 민생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총선 승리를 위한 상위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신중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의 새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효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열린우리당 핵심 인사는 "만약 한나라당이 전당대회 후 지지도 회복 국면에 들어가고 그 정도가 위협적일 경우에는 '대통령 총선 전 입당 카드'를 다시 꺼낼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수호.신용호 기자

<盧대통령 입당 관련 발언>

"입당할 것이다. 내가 입당하지 않아도 열린우리당 당원인 것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입당하면 '총선 개입이 시작됐다'고 공격해 시끄러울 것이다."-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총선용'이라고 하는데, 입당까지 하면 나도 정치적 공방에 휩쓸려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늦게 하려 한다."-2004년 2월 18일 인천.경기지역 언론사 합동회견에서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기 때문에 입당하고 싶다. 지금 특검 조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입당을 미루고 있다."-2004년 1월 14일 내.외신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언제든 정당에 입당해서 당당하게 선거운동도 할 수 있어야 한다."-2003년 12월 16일 특별기자회견에서

"정치적 공방 가운데 가장 대미지(손실)가 적고, 전략적으로 입당의 효과가 좋은 시점에 입당할 것."-2003년 12월 7일 국민일보 창간기념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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